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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독주회…연주곡 어떻게 정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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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원재연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는 곡을 중심으로 독주회를 구성한다”고 했다. 김성룡 기자

원재연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는 곡을 중심으로 독주회를 구성한다”고 했다. 김성룡 기자

연주곡목을 모르는 연주회도 있다. 10월 내한하는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와 11월 유자 왕의 공연이다. 이들이 연주할 곡은 공연장에 가서야 알게 된다. 쉬프는 지난해 내한 공연에서도 프로그램을 미리 밝히지 않았다. 연주 당일 곡목을 선택해 연주하면서 해설을 붙였다. 쉬프는 “청중에게 더 나은 음악을 들려주는 방식”이라며 요즘 곳곳에서 이렇게 연주한다. 유자 왕 또한 이번 내한 공연의 부제를 ‘Veiling Program: 베일에 싸인 프로그램’이라 붙였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최근 네덜란드·덴마크·미국 등에서 차이콥스키의 ‘사계’ 12곡과 쇼팽의 연습곡 Op.10 12곡을 매치해 독주회를 열고 있다. 지난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전에는 콩쿠르 출전 곡인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12곡)으로 독주회를 했다.

독주회 연주곡을 미리 공개하지 않은 안드라스 쉬프. [사진 마스트미디어]

독주회 연주곡을 미리 공개하지 않은 안드라스 쉬프. [사진 마스트미디어]

피아니스트들은 독주회에서 연주할 곡을 어떻게 결정할까. 쉬프, 유자 왕처럼 끝까지 미뤘다 선택하기도 하고, 임윤찬처럼 같은 제목으로 된 세트 전체를 연주하기도 한다. 또 길고 거대한 작품 하나를 메인으로 정해놓고 나머지 작품을 배치할 때도 있다. 다음 달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여는 피아니스트 원재연과 함께 ‘프로그래밍 세계’를 들여다봤다. 부조니 국제 콩쿠르 2위 수상 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피아니스트다.

원재연은 “남들과 다르게 연주할 수 있는 곡, 새로운 해석을 들려줄 확신이 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한다”고 했다. 다음 달 독주회에도 프로그램의 키를 쥔 작품이 있다. 처음 연주하는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C.P.E) 바흐의 소나타(W.55 No.4)다. 우리가 잘 아는 J.S.바흐의 둘째 아들이다. 힘찬 화음과 스타카토로 시작해 음악적 재료가 계속해서 변화하는데 밝은 빛깔을 잃지 않는다. 원재연은 “꽤 많이 연주되는 곡인데,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이렇게 저렇게 연주해보고 싶다는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요소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고 독특한 점을 보여주고 싶다”며 이 곡으로 독주회를 시작한다.

유자왕도 11월 독주회 프로그램을 비공개한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유자왕도 11월 독주회 프로그램을 비공개한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그는 “대가 피아니스트들의 공연을 보면 그 당시 그들이 꽂혀있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작품을 중심으로 선곡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원재연은 2018년 잘츠부르크에서 열렸던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하이든 소나타 (49번)와 슈베르트 즉흥곡(D.935) 조합, 같은 해 쾰른에서 봤던 미하일 플레트네프의 올 라흐마니노프 프로그램을 예로 들었다. “거대한 피아니스트들이 발견한 음악의 매력이 전해졌다. 제일 자신 있고 좋아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달 공연에서 원재연은 C.P.E.바흐에 하이든·베토벤을 시대 순서대로 붙였다. 하이든의 소나타 C장조(Hob:16/48)는 “C.P.E.바흐의 밝음과 대조되는 곡으로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려 했다”는 생각에 골랐다. 이어지는 베토벤 환상곡 g단조(Op.77)는 그가 동료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듣고 나도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곡이다. “자주 들을 수 없는 곡인데 내가 연주해서 청중을 설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뜻 질서가 없어 보이지만 듣고 나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뭉쳐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미하일 플레트네프는 모두 쇼팽의 곡으로 한국 독주회를 연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미하일 플레트네프는 모두 쇼팽의 곡으로 한국 독주회를 연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피아니스트 신수정(서울대 명예교수)은 “성격이 분명한 독주회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토벤·슈베르트의 전곡을 연주하거나 시대에 따른 소나타 형식의 변화를 살펴보는 식의 학구적 프로그램이 트렌드다.” 또 연주자들의 기량 향상에 따른 변화도 소개했다. “기교적으로 어려운 쇼팽 연습곡 24곡을 예전에는 한두곡씩 프로그램에 넣었다면, 요즘에는 12곡씩 한 세트를 전부 연주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서로 영감을 주고받은 작곡가의 작품을 매치하거나 같은 주제로 쓰인 음악을 연결하는 방법도 있다. 올해 탄생 150주년인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만으로 된 공연도 이어지고 있다. 플레트네프는 다음 달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폴로네이즈, 환상곡, 뱃노래 등 쇼팽만 연주한다.

원재연은 “피아니스트들은 당장 연주하고 싶은 곡이 100곡씩 있을 것”이라며 “그들이 지금 무대에서 연주하는 곡은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고 자신 있는 작품이니 순간을 함께 즐겨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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