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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진 불 다시 살아났다…34세대 실버타운 덮친 하와이 산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3일(현지시간) 미 연방 재난관리청(FEMA) 수색팀이 하와이 라하이나에서 화재로 파괴된 잔해들 사이로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 연방 재난관리청(FEMA) 수색팀이 하와이 라하이나에서 화재로 파괴된 잔해들 사이로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와이 라하이나의 산불 피해 지역에 있던 34세대 노인 주거 단지가 화재에 휩싸인 사실이 알려지며 이곳의 노인들 상당수가 희생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치과 예약 때문에 화 면해…바보같은 행운일 뿐”

하와이 마우이섬에 있는 노인 주거 단지 ‘할레 마하올루 에오노’의 생존 주민 샌포드 힐(72)는 16일(현지시간) 미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웃 중 누가 살아남았는지 알 길이 없다”며 화재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화재가 발생했던 지난 8일 오전 8시쯤 힐과 이웃들 대부분은 소방관들이 마을 동쪽에서 화재를 진압하는 것을 지켜봤다.

건물 관리인은 세입자들에게 ‘대피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돌아다녔고 일부 주민들은 주차장에 모였다.

힐은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피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갖췄다”며 “하지만 이후 ‘불길이 100% 잡혔다’고 했고 경찰과 소방도 떠났다”고 전했다.

8일 오전 9시 55분쯤 마우이 소방국은 라하이나 산불이 100% 진압됐다고 선언했으나, 이후 강풍을 타고 잔불이 살아났다.

당시엔 힐도 화재가 진압됐다고 생각하고 오후 1시 30분에 예약해뒀던 치과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바람이 매우 거셌지만 타는 듯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고 한다.

힐은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화재를 우려하지는 않았다”며 “다른 사람들은 다 집에 있었다. 아무도 대피하지 않았다”고 했다.

“34세대 중 확인된 생존자는 극소수”

지난 15일 미국 하와이 라하이나에서 CJTF-50 합동 태스크포스가 산불 피해 입은 지역에 대한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5일 미국 하와이 라하이나에서 CJTF-50 합동 태스크포스가 산불 피해 입은 지역에 대한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오후 3시쯤 치과에 갔다 돌아오던 힐은 시커먼 연기가 동쪽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거센 바람에 불씨가 살아나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집을 향해 차를 몰던 힐은 급히 달아나는 한 여성과 만났다. 이 여성은 “마을이 불타고 있다”고 알렸고, 힐은 이 여성을 차에 태우고 함께 대피한 덕에 생존할 수 있었다. 비상 사이렌은 울리지 않았다.

힐이 거주하던 단지에는 34세대가 있었지만 이웃 중 탈출을 확인한 건 3명뿐이며, 다른 생존자들로부터 생존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도 있지만 몇 명 되지 않는다고 힐은 전했다.

실버타운을 소유한 회사에도 전화를 걸어 봤지만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힐은 “제때 경고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죽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며 “내가 생존한 건 그저 바보 같은 행운이다. 나도 도망칠 때를 놓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힐은 집 없이 지내다 2016년 라하이나의 이 노인 주거단지로 이사했다. 월 144달러(약 19만원)의 저렴한 임대료 덕에 월 914달러(약 122만원)의 사회보장수당으로 편히 지낼 수 있었다.

화재로 하루아침에 집이 사라지면서 앞으로 어디서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됐다. 수십년동안 마우이를 찍어온 사진이 담긴 컴퓨터도 타 버렸다.

이 단지에 살던 다른 노인들의 가족도 애를 태우고 있다.

98세인 조모를 찾기 위해 캘리포니아주에서 온 클리퍼드 아비하이는 대피소를 찾아다니고 실종 전단도 붙이고 다녔지만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다며 “내가 원하는 것은 할머니가 무사하다는 확인뿐”이라고 말했다.

90세인 할머니를 찾는 대니얼 야쿠트 역시 “우리는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찾아볼 수도 없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하와이 당국이 신원을 공개한 사망자 2명 가운데 1명인 버디 잔톡(79) 역시 이 노인주거 단지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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