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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 이게 여야가 싸울 일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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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실공사, 어제오늘 일도, 보수·진보 문제도 아냐  

철저하게 진상 밝히고 재발 방지에 힘을 합쳐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의 철근 누락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당정은 입주자에게는 만족할 만한 손해배상을 하고 입주 예정자에게는 계약해지권 부여 등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또 필요하면 국정조사도 추진하기로 했다. LH는 철근 누락 15개 아파트 단지의 설계·시공·감리 관련 업체와 관련자를 경찰청에 수사 의뢰하겠다고 발표했다. 설계부터 감리까지 건설공사의 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관예우, 이권 개입, 담합, 부정·부패 행위 등을 감시하는 ‘반카르텔 공정건설 추진본부’도 설치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는 반(反)카르텔 정부”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지 하루 만에 대통령 발언에서 이름을 딴 조직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LH가 공공아파트 수요자를 위해 이 정도의 순발력을 진즉에 발휘했다면 철근 누락 사태를 사전에 막을 수도 있었을 터다. ‘사후약방문’식의 대책을 내놓는 LH의 구태는 이번에도 반복됐다.

공기업 직원뿐 아니라 주택법에 따라 짓는 민간 아파트의 감리업체 선정에 개입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의 유착 의혹도 이참에 투명하게 밝혀낼 필요가 있다. 오죽하면 건설 현장의 폭력인 ‘건폭’ 중에 건설업체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 같은 ‘관폭(官暴)’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정부가 ‘철근 누락’ 점검 대상을 2017년 이후 준공한 무량판 구조의 전국 민간 아파트 293곳으로 확대했다. 일부 민간 아파트는 주거동에도 대들보 없이 기둥 위에 슬래브를 바로 얹는 무량판 구조를 채택했다고 한다. 정부는 최대한 신속히 점검을 서둘러 주민 불안과 공포가 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그제 국무회의에서 부실공사의 근본 원인으로 건설산업의 이권 카르텔을 지적하면서 “지금 현재 입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무량판 공법 지하주차장은 모두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설계 오류, 부실 시공, 부실 감리가 이루어졌다”며 과거 정부 책임을 지적했다.

지난 정부가 잘못한 일은 바로잡아야 한다. 여당의 주장처럼 문재인 정권에서 주택 건설을 지휘했던 김현미·변창흠 두 전직 국토부 장관이 설명해야 할 대목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드러난 아파트 부실공사 사태를 무조건 지난 정부 탓으로 돌리거나 지난 정부를 타깃으로 국정조사를 추진하는 정치적 접근만이 해법은 아닐 것이다. 윤 정부가 출범한 지 이미 1년3개월이나 지났다. 철근 빼먹기나 LH 전관예우 관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보수·진보의 문제도 아니다. 불필요하게 이번 사태를 정쟁화하는 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도, 시급하지도 않다. 철저하게 부실공사의 진상을 밝히고 원인을 찾아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데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