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 수사] 밀어붙이는 여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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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대선자금 수사를 놓고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조율의 흔적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쪽 자금관리를 맡았던 열린우리당 이상수 의원은 지난 2일 盧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다. 대통령이 '대선자금 수사 확대' 의지를 밝힌 기자회견 당일이다.

李의원은 "우리당은 아무리 까봐야 결코 부끄러운 내용이 없다. 다 밝히고 싶다"고 했고, 盧대통령은 "충분히 이해한다. 1백% 정직하게 고백하는 게 좋겠다. 차제에 지구당에 내려간 돈까지 다 밝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결국 盧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열린우리당의 '검찰 수사 확대' 요구에 화답한 셈이 됐다. 이상수 의원은 3일에도 "2~3일 이내에 우리당의 대선자금 전모가 밝혀질 것"이라며 "이미 밝힐 준비는 다 돼 있지만 검찰 소환 이전에 할지, 후에 할지를 놓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번갈아 가며 대선자금 수사를 밀어붙이는 국면이다.

여기엔 '대선자금 수사 후 정치개혁'이란 공감대가 자리잡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원기 창당준비위원장도 이날 운영위원장단 회의에서 "정치 불신과 정치부패 비리 구조를 청산하는 것은 참여정부가 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盧대통령은 후일 이 업적으로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여정부의 첫번째 치적을 '정치자금 투명화'로 상정하며 배수진을 친 것이다.

이 때문에 여권은 대선자금 수사가 결국 정치자금 전반으로 번져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 총선자금까지 수사하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전날 盧대통령의 언급은 현 단계를 고려한 수위조절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열린우리당 핵심 인사는 "'지구당으로 내려간 돈이나 정당 장부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이전 총선자금까지 연결될 수도 있겠지만…'이란 대통령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결국 이번 수사는 2000년 총선자금과 각 당 경선자금을 포함한 모든 정치자금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여권은 수사 결과 대선 당시 盧캠프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캠프의 전체 자금 규모가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양측 간 엄청난 규모 차는 물론이고 그렇게 차이가 나게 된 배경도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盧대통령 핵심 참모 출신인 당 관계자는 "기업들이 선거 때마다 보험성과 투기성을 저울질해 돈을 뿌려온 행태가 적나라하게 밝혀질 것"이라며 "이를 토대로 국민적 합의를 얻어 정치자금과 관련한 전면적인 제도 개선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자금 제공자들의 문제도 이번 기회에 바로잡지 않으면 정치인 단죄만으론 부패의 고리를 끊기 어렵다는 게 현재 여권 중심부의 기류"라고 말했다.

이수호 기자 <hodori@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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