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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 붕괴 위험" 행복청, 지자체에 6번 경고…끝내 길 안 막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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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전국 곳곳에 홍수경보가 발령되는 등 물 폭탄이 쏟아져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6일 충북 청주 오송 궁평 2지하차도 침수 사고현장에서 소방과 경찰, 군이 합동으로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전국 곳곳에 홍수경보가 발령되는 등 물 폭탄이 쏟아져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6일 충북 청주 오송 궁평 2지하차도 침수 사고현장에서 소방과 경찰, 군이 합동으로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미호천 제방 범람 가능성 있다” 수차례 경고 

충북 청주에서 발생한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가 발생하기 전 충북도와 청주시가 제방 붕괴를 목격한 관계당국 경고를 수차례 받고도 도로통제 등 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8일 충북도·청주시·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청) 등에 따르면 미호천교 신축 공사 발주처인 행복청은 사고 당일인 지난 15일 새벽부터 제방 붕괴 위기를 청주시 등 관할 자치단체와 도로관리 주체인 충북도에 알렸다. 미호천교 공사 현장은 지하차도 침수 사고 난 곳과 불과 300~400m 떨어져 있다. 사고 당일 오전 4시10분 미호천교 일대에 ‘홍수경보’가 내려지면서 하천 범람으로 인한 농경지, 도로 침수가 예견됐던 곳이다.

미호천교 공사현장에 있던 감리단장 A씨는 이날 오전 6시26분쯤 임시 제방 턱 밑까지 물이 차오르자, 행복청에 이 사실을 보고했다. 침수 사고(오전 8시40분)가 나기 2시간 20분쯤 전이다. A씨는 오전 7시4분, 7시58분 두 차례 112에 미호천교 제방 붕괴 위기에 따른 교통통제를 요청했다고 한다. 경찰은 신고를 접수한지 1시간쯤 뒤인 오전 9시1분 현장에 도착했다.

행복청은 제방 붕괴 위험이 있다고 판단, 오전 6시29분 청주시 하천과에 이 사실을 알렸다. 청주시에 따르면 전화를 건 사람은 미호천교에 현장에 나간 행복청 직원이었다고 한다. 박학순 청주시 국가하천팀장은 “‘미호천교 수위가 올라 공사 구간 내 제방이 범람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란 취지로 유선 전화를 받았다”며 “금강홍수통제소에서 보내는 경보와 비슷한 취지로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하천팀은 주로 배수문 관리를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단 상황만 인지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차량 침수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17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 2지하차도 사고현장에서 군과 소방당국이 실종자 수색과 배수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차량 침수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17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 2지하차도 사고현장에서 군과 소방당국이 실종자 수색과 배수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범람 시 침수 뻔한데…도로통제 없어 

이와함께 행복청은 6시31분과 6시38분, 7시2분 세 차례에 걸쳐 충북도 자연재난과에 연락했다. 충북도가 공개한 통화 내용에는 행복청 관계자가 “미호천교 범람위험이 있어 연락을 드렸다. 청주시·경찰청에 연락했고, 재난문자를 요청했다”고 나와 있다.

전화를 받은 충북도 관계자는 “그쪽(청주시와 경찰청)에 연락한 거 맞으시죠”라고 묻는다. 행복청 관계자는 “요청했다. 알고 있어야 할 거 같아 전화했다”고 답한다. 하지만 충북도 안전부서와 지하차도 관리를 맡은 도로관리사업소는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 도로 통제를 하지 않았다.

행복청은 또 7시1분 흥덕구 건설과에 전화를 걸어 “공사 구간 내 제방이 범람할 수 있다. 하천과에서 알고 있어라”고 전화했다. 행복청은 7시52분엔 흥덕구에 “하천제방 범람 위험으로 인근 마을 주민 대피 방송을 요청한다”고 전했다.

흥덕구 건설과는 이 전화를 받고는 1분 뒤인 7시53분 관련 부서에 “궁평리 제방이 범람할 수 있어서 인근 마을 주민 대피방송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이때도 도로 통제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앞서 환경부 산하 금강홍수통제소는 미호천교가 계획홍수위인 9.29m에 도달한 오전 6시31분 청주시 흥덕구에 전화를 걸어 “주민대피와 교통통제 등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행복청은 도와 시·구 등 지자체에 최소 6차례 이상 하천 범람을 경고했다. 하지만 침수 가능성이 큰 미호천변 지하차도 통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청주시 관계자는 “‘범람 위험이 있다’는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상황 공유가 이뤄졌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18일 오전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수색구조현장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희생자 유류품 수색이 이어지고 있는 지하차도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오전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수색구조현장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희생자 유류품 수색이 이어지고 있는 지하차도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자체 미호천교 일대 종합 대처했어야” 

또 다른 청주시 관계자는 “행복청에서 범람 위기 전화를 받았을 땐 강내면 쪽 침수가 이뤄지고 있어서 주민 대피가 우선이었다”며 “미호천교 공사 상황과 범람시 강물 유입 경로를 누구보다 잘 아는 행복청이 범람 가능성이 큰 위치(임시 제방)라도 알려줬으면 상황대처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로 통제 권한을 가진 충북도는 “사고 직전까지 도로 통제 매뉴얼에 따른 징후가 없었고, 강물이 2~3분만에 유입하면서 침수를 막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충북도가 공개한 이날 상황 조치 상황에는 오송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이 오전 8시3분 소방본부 상황실에 ‘임시제방이 무너져 미호강이 범람하고 있다’고 전파했다.

상황실은 다시 시청 당직실에 관련 내용을 전파했으나, 시청은 이를 충북도 담당 부서에 알리지 않았다. 이 상황 보고서엔 오송 지하차도 침수 시작은 오전 8시40분, 완전 침수를 8시44분으로 불과 4분 만에 물이 가득 찬 것으로 나타났다.

공하성 우석대 교수(소방방재학과)는 “하천 범람 위기 경고에도 재난 안전 책임을 진 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며 “신고를 받은 즉시 ‘미호천교’ 일대에 주민 대피를 포함해 침수 가능성이 큰 도로, 시설물 등에 대한 신속한 통제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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