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사례|구남웅<서울 천동국교 교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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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 3월 우리학교에 전학 온 Y라는 6학년 남학생이 상습적으로 본드를 흡입하는 학생임을 알게된 것은 전학 온지 10일쯤 지나서였다. 평소에도 몸에서 휘발성 물질의 냄새가 나 의아해 하던 중 학교 부근 산에서 본드를 흡입하는 것이 목격된 것이다.
전학오기 전 다니던 면목동 모 국민학교 4학년 때 학교주변 불량서클 「형」들과 어울리다 본드에 빠지게됐다는 Y는 소위 결손가정의 아이였다. 구멍가게를 하는 아버지는 걸핏하면 술에 취해 식구들을 때렸고 젊은 계모는 Y를 화풀이의 상대로 삼았으며 위로 누나 넷은 모두 가출한 상태였다.
우리는 Y가 본드에서 손을 떼도록 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가정의 연계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학부모에게 협조를 부탁했으나 학부모들은 오히려 「이미 버린 자식」이니 헛수고하지 말라는 태도로 나왔다.
우리는 할 수 없이 학교에서라도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기로 했다.
교감인 나는 아버지 역할을 맡아 Y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엄히 타이르고, 담임 여교사는 어머니역할을 맡아 하루 한번씩이라도 따뜻하게 꼭 껴안아 준 뒤 집으로 돌려보내는 등 정을 쏟아 부었다.
학급 내 교육방송 시청준비담당자라는 직책을 맡겨 책임감을 갖고 학급 일에 참여토록 유도하는 한편 가끔 집으로 전화를 걸어 무엇을 하고있는지를 묻는 등 관심을 표명했다.
Y가 면목동 살 때 어울렸다는 불량 청소년들과 끈이 이어지고 있는 눈치여서 관할파출소에 배후를 알아주도록 의뢰했으며 등하교 때 주변 불량배들과 새로 어울리는 일이 없도록 눈에 안띄게 감시를 했다.
이처럼 학교의 노력이 계속되자 Y의 상태는 어느 정도 호전됐다.
그러나 Y를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은 무겁다. 본드에서 완전히 손을 끊게 하지도 못했고 재발방지책도 없는 상태에서 곧 졸업을 시켜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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