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제야 돌아와 잔 올립니다”/소 거주 민긍호의병장 손자들 첫성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부친 “할아버지 산소 찾아라” 유언/이국땅 전전… 방소 동포에게 부탁
구한말 의병을 일으켜 일제에 항거하다 순국한 후 절손된 것으로 전해지던 민긍호의병장의 손자·손녀 등 직계혈육이 만주·소련의 이국땅을 전전하던 끝에 현재 카자흐공화국 수도 알마아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할아버지,이역 수만리를 떠나 살다 이제야 고국에 돌아와 꿈에 그리던 영전에 절을 올립니다. 부디 기쁜 마음으로 잃었던 손자들이 따라놓은 이 잔을 받아주십시오.』
4일 오후1시 원주시 봉산1동 봉황산 중턱에 자리잡은 한말의병장 민긍호의 묘소 앞에는 뜻밖에도 근 한세기를 격절한 채 남의 땅을 떠돌며 생사조차 묘연하던 그의 손자들이 찾아들었다.
알마아타에서 부터 소중하게 품속에 안고온 보트카로 할아버지 무덤 앞에 제주를 올린 민안톤(58)·김알렉산드라(46)·레온치(41) 3남매와 안톤씨의 맏아들 아르카지(35)는 초겨울 바람이 훑고가는 찬 잔디바닥에 엎드려 통한의 긴 흐느낌 속에 좀처럼 일어설 줄을 몰랐다.
민긍호는 구한말 한국군 원주 진위대에서 특무정교로 복무하던중 1907년 일제가 군대 해산령을 내리자 의병을 일으켜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많은 전공을 세우며 활약하다가 피체,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순국열사.
의거당시 아내와 딸·아들 남매를 만주 하얼빈으로 피신시킨뒤 곧바로 순국하는 바람에 가족과는 그로써 영별하게 되고,이후 그들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사실상의 절손상태에서 집안 재종손인 민인식씨(46)가 양손자로 입적,지금까지 제사를 받들어 왔었다.
이번에 한국을 찾아온 민안톤씨 일행은 두살의 어린나이로 어머니의 등에 업혀 만주로 유리돼 갔던 민영욱씨(77년 사망·당시 72세)의 아들·딸·손자로 민긍호에게는 한세기 가까운 절손을 다시 이어주게될 소중한 직계 피붙이다.
낯선 이국에서 영위해 온 이들의 삶은 이웃나라에 송두리째 사직을 빼앗겨야 했던 비색한 국운 만큼이나 간고로 가득한 것이었다.
만주 땅에 발붙인지 불과 몇년 안돼 지면있는 한 안중근의병 부대원으로부터 아버지의 순국소식을 들은 영욱씨 일가는 1910년대초 그곳까지 뻗치던 일제의 마수를 피해 러시아령 연해주로 이주했다. 영욱씨는 연해주의 포시에트·하산 등지를 오가며 피맺힌 생존의 싸움을 계속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 사범학교 노문과를 졸업,소학교 교원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이주동포인 김타치야나(84·생존)와 결혼해 슬하에 세레나(59)와 안톤 등 두남매를 두고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이루어가던 그들에게 1937년 청천벽력과도 같은 스탈린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령이 떨어졌다.
죽으라고 보냈던 끝없는 모랫벌의 황무지에서도 그들은 한뼘한뼘 농사일을 일구어가며 끝내 살아남았다. 조국이 해방됐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이어진 남북분단과 이데올로기 대립에 의한 국제냉전의 상황에 막혀 고국은 한낱 꿈으로만 그리면서 카자흐공화국 침켄트를 정착지로 삼고 49년에는 다시 차남 레온치(41)를 낳았다.
1977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영욱씨는 아내와 장성한 자식 3남매를 모아놓고 한맺힌 유언을 남겼다.
『너의 할아버지 긍자호자 어른은 망국을 건지기위해 초개와도 같이 한목숨을 던진 훌륭한 분이시다. 자식된 도리로 그 무덤조차 보지 못하고 가는 나의 이 불효를 명심하고 너희들은 무슨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할아버지의 영전을 찾도록 하라.』
침켄트사범대를 졸업하고 중학교·고등직업기술학교 등에서 교원으로 일하다가 알마아타로 이주,80년대 후반부터 자영기업제의 도입과 함께 카페라치라는 건설자영업자들의 조합을 조직하고 회장을 맡게된 민안톤씨가 고국에 묻힌 할아버지 민긍호의 묘소를 찾기위해 발벗고 나서기 시작한 것은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소간 오랜 금단의 벽이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던 89년에 들어서 부터였다.
알마아타의 한국어신문 『레닌기치』기자 이정희씨를 사이에 넣고 일을 추진하던 중 안톤씨는 그해 가을 그곳을 방문했던 부산일보의 정서환기자를 만났다.
정씨는 귀국후 곧 안톤씨의 애끓는 사연을 기사화했고 이를 부산에 사는 원주출신의 민영덕씨가 읽고 민씨 종친회에 알려주었다.
연도산업㈜이란 식품회사를 경영하는 재종동생 민봉식씨(51)가 소식을 듣자마자 상용을 겸해 알마아타로 달려갔다. 처음보는 얼굴이고 오랜 격절로 말마저 통하지 않았지만 핏줄을 확인한 재종형재들은 얼싸안은채 소리를 내 엉엉 울었다.
귀국한 봉식씨와 인식씨는 지난 9월초 안톤씨와 알렉산드라·레온치 등 재종형제와 조카 아르카지에게 초청장을 보냈고 이들은 설레는 가슴을 안고 지난달 30일 마침내 꿈속에서만 그려오던 할아버지의 땅을 밟았다.
「살신성인 정신불사 민족영웅 의병대장 민특무긍호공지묘」란 글이 새겨진 무덤앞 묘비를 자랑스럽게 어루만지면서 안톤씨는 말했다.
『개천가에 가매장된채 버려져 있었다는 활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해 이렇듯 훌륭한 묘역안에 모셔주신 고국의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봉제기를 해온 친척들은 물론이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묘소관리를 위해 애쓰신 이 마을 부인회·노인회 어른들께도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내년부터는 음력 9월9일 제일마다 이곳에 와 손수 풀도 깎고 술잔도 올리렵니다.』<정교용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