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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가 나토의 연못 됐다”…서방 vs 러시아 신냉전 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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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0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에서 악수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왼쪽)과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오른쪽). 가운데는 옌스 스톨텐베르그나토 사무총장. 에르도안 대통령의 가입 지지로 스웨덴이 나토 에 합류할 전망이다. [AP=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에서 악수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왼쪽)과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오른쪽). 가운데는 옌스 스톨텐베르그나토 사무총장. 에르도안 대통령의 가입 지지로 스웨덴이 나토 에 합류할 전망이다. [AP=연합뉴스]

스웨덴이 200년 넘게 유지하던 중립국 전통을 버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32번째 회원국으로 합류할 전망이다. 1년2개월 동안 꿈쩍 않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지지하기로 10일(현지시간) 전격 합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러시아·중국의 반대에 막혀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나토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에르도안 대통령과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의 회담을 중재한 후 기자회견을 열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안을 의회에 전달하고, 비준될 수 있도록 보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해군력 강한 스웨덴, 나토에 실질 도움

스웨덴은 나폴레옹 전쟁(1803~1815) 이후 200여 년 동안 지켜온 중립국 지위와 ‘군사 비동맹주의’ 전통을 깨고 지난해 5월 핀란드와 함께 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하지만 지난 4월 회원국이 된 핀란드와 달리 스웨덴은 튀르키예와 헝가리의 반대로 나토 가입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튀르키예가 지지로 돌아섰고, 헝가리도 동의 절차를 밟을 것을 시사하면서 걸림돌이 제거됐다. 나토 회원국의 되기 위해서는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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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지난해 2월 발발한 우크라니아 전쟁이 촉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나토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우려해 국제 규범을 무시한 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이에 핀란드·스웨덴이 안보 불안을 느꼈고, 나토라는 집단안보체제 가입을 통해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기로 했다.

스웨덴이 나토에 합류하면 유럽의 안보 지형이 급변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하면 나토는 추가로 1600㎞ 이상의 발트해 해안선을 품게 된다. 러시아로선 자신의 영토 인근인 발트해 인접 국가 전체가 나토 회원국이 된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이언 브레진스키 선임연구원은 “스웨덴이 합류하면 발트해가 ‘나토의 연못’이 된다”고 말했다. 또 해군력이 강하고 전투기도 자체 생산해 수출하는 스웨덴의 합류는 나토에 실질적인 군사적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세계 최대 군사동맹체인 나토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상임이사국인 러·중의 반대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던 유엔 안보리를 대신해 나토의 존재감이 커질 수 있다. 여기에 스웨덴과 핀란드가 중립국으로서 오랜 기간 러시아와 지내며 획득한 정보도 나토의 자산이라고 WSJ는 평가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완충지대’가 줄면서 서방 대 반(反)서방 대결이 한층 치열해지는 신(新)냉전체제가 펼쳐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둘러싸고 에르도안 대통령의 밀당 외교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의 길을 열어주며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과시하고 실리를 챙겼다. 이날 회담에서 스웨덴은 EU 회원국으로서 튀르키예의 EU 가입을 지원하고, EU-튀르키예의 관세동맹 개편, 비자 면제 조치 등을 돕기로 합의했다. 무엇보다 튀르키예는 숙원이었던 200억 달러(약 26조원) 규모의 F-16 전투기 현대화와 추가 구매란 소득을 미국으로부터 얻을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에르도안 대통령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500일을 넘긴 가운데 11~12일 나토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약속이 어느 정도 수위로 합의될지도 주목된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11일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회원국 가입을 향한 길과 관련해 명확하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12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참석하는 첫 나토·우크라이나 평의회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위해 회원국 자격 행동 계획(MAP·Membership Action Plan)의 적용 제외를 결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MAP는 나토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에 대해 정치·경제·군사적 목표치를 제시하고 해당국이 이를 충족했는지를 평가하는 절차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신속한 가입을 위해 핀란드·스웨덴에 대해 적용을 제외했다.

바이든 “에르도안 결정 환영”

미국은 이번 나토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선 긍정적인 신호를 보낼 예정이지만 가입 일정표는 제시할 수 없다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토 가입 일정표를 제시하지 않는 건 전례가 없고 웃기는 일”이라며 “나토 정상회담에서 공개적으로 거론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나토 정상회의에 강력 반발했다.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는 10일 기자들에게 “러시아와 나토 회원국 간 대치 상황이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 쪽으로 계속 후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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