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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대학·학과 무제한 지원…‘매칭이론’으로 대입 풀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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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호 16면

게임이론으로 본 세상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소위 킬러 문제를 없애는 것을 놓고 찬반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공교육과 사교육 문제에서 시작된 논란은 이제 학생부 위주의 ‘수시’와 수능 위주의 ‘정시’ 중에서 어느 것이 나은지에 대한 문제로 넘어가고 있다. 대학 입시와 관련해서는 너무도 다양한 의견이 있기 때문에 정말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경제학의 ‘매칭이론’(Matching Theory)을 이용하면 이런 대학 입시의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가능하다.

알고리즘 돌려 대입 합격자 선발 가능

10년쯤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연세대 상경대학 부학장의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찾아와 자퇴를 하겠다고 했다. 성적이 나빠서 학사 경고를 받고 강제 퇴학을 당하는 학생은 봤지만, 스스로 자퇴하는 학생은 처음이었다. 제일 먼저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가정 문제가 있어서 학비를 내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앉혀 놓고 사정을 물어봤지만 학생은 대답을 회피했다.

그때 순간적으로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서울대에 합격한 게 아닐까’였다. 결국 그거였다. 학생에게 축하한다고 말하고 자퇴를 처리해 주었다. 소위 ‘반수’를 해서 성공한 경우였던 것이다. 하지만 축하해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해당 학생은 전년도에 서울대 A학과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울대 B학과에 지원해 합격한 것이다. 아마도 처음부터 B학과에 지원했으면 합격했을 것이다. 어쨌든 본인은 한 해 늦게라도 원하던 대학교에 합격해서 다행이지만, 전년도에 그 학생이 아니었다면 연세대에 합격했을 학생이 있었을 테니 씁쓸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학교나 직장이나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자신의 능력에 맞는 학교와 직장에 합격하는 것은 중요하다. 대학에 합격하고도 다시 재수하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고, 직장에 취직하고도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자 몇 달 만에 사표를 쓰는 사람이 많다. 합격하고 포기하는 사람도 시간 낭비이고, 그 사람 때문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도 손해다. 대학이나 기업도 합격시킨 사람이 중간에 나가버리면 상당한 손해를 보게 된다.

이런 문제를 연구하는 경제학의 분야가 2012년 로이드 섀플리 교수와 앨빈 로스 교수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안겨 준 ‘매칭이론’이다. 매칭이론의 궁극적인 목적은 처음부터 자신이 갈 수 있는 최선의 대학에, 최선의 직장에 가는 것이다. 이런 목적이 달성되는 것을 ‘안정적 매칭’(stable matching)이라고 부른다. 안정적 매칭이 이뤄지면 사람들은 자신이 합격한 대학이나 직장에 대해 납득을 하고, 다시 도전하기 위해 공부하는 일을 멈추게 된다. 항상 자신의 능력을 기준으로 최선인 곳에 합격하므로 후회도 고민도 없어지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입시는 이런 안정적 매칭에 완전히 반대된다. 생각해 보자. 당신이 연봉 4000만원을 받는 직장에 합격해서 다니고 있는데, 스스로 현재의 직장이 ‘자신의 능력으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납득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하겠는가? 당연히 현재의 직장보다 좋다고 생각되는 연봉을 5000만원, 6000만원 주는 직장에 지원했는데 모두 불합격한 경험이 필요하다.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은 모두 불합격을 했으니 미련을 버리고 현재의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어야 비로소 안정적인 매칭인 것이다.

지난 4일 서울 성균관대에서 열린 ‘2024 주요 대학 및 의학계열 수시·정시 합격선 전망’ 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배치 참고표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서울 성균관대에서 열린 ‘2024 주요 대학 및 의학계열 수시·정시 합격선 전망’ 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배치 참고표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대한민국의 대학 입시는 어떤가? 앞에서 언급한 반수를 통해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의 경우를 보자. 그 학생은 어째서 전년도에 서울대 A학과만 지원하고 B학과를 지원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간단한데, 현행 입시 제도에서는 하나의 대학에 한 학과만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대학 입시 제도가 서울대의 여러 학과에 동시 지원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면 그 학생은 서울대의 A학과 뿐 아니라 B학과에도 지원했을 것이고, 그러면 A학과에는 불합격이지만 B학과에 합격했을 것이다. 그러면 1년을 다시 입시에 허비하지 않고 대학을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행 입시에서, 특히 수능으로 대학을 가는 정시에 응시하는 학생들은 서울대를 포함해 한 대학에는 단 1개의 학과에 지원할 수밖에 없고, 모든 대학을 합해서 단 3개의 대학에만 지원할 수 있다. 소위 가군, 나군, 다군이라고 대학을 세 그룹으로 분류해 놓고 각 군에서 한 대학만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가군에는 연세대와 고려대가 같이 속해 있는 관계로 대한민국의 어떤 학생도 연세대와 고려대에 동시에 지원할 수 없다.

대입 수험생이나 학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여러 학과에 모두 지원한 후 자신이 합격한 학과 중에서 연세대 C학과가 가장 원하는 곳이라서 입학했다고 하면 스스로 납득하고 미련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 곳 대학의 200여 개의 학과 중에서 단 2곳에만 지원할 수 있다 보니 얼마나 답답한 심정이겠는가? 심지어 지원을 할 때 정말 가고 싶은 곳은 A학과이지만 합격 확률이 60%라고 판단돼 합격 확률이 90%인 B학과에 지원해서 합격했다면? 여전히 그 학생은 평생 아쉬움과 미련이 있을 것이다. 가장 가고 싶었던 A학과에는 지원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시에서 단 3곳만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는 수능의 한 문제 한 문제에 더 긴장하게 되고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문제를 실수로 틀리면 학과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바뀌기 때문이다.

운 바라는 ‘요행’ 때문 매칭이론 꺼려

매칭 이론에서 가장 선구적인 연구인 게일-섀플리 알고리즘(Gale-Shapley algorithm)은 이런 대학 입시에서 어떤 제도가 학생들에게 최선의 대학과 학과에 합격을 보장할 수 있는지를 수학적 증명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아주 단순화해서 설명하면 학생은 자신이 가장 가고 싶은 대학의 학과부터 차례로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지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가장 가고 싶은 학과가 A학과라면 그곳에 먼저 지원하고 합격하면 다행이지만 불합격하면 다음으로 가고 싶은 B학과에 지원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차례로 내려가다가 결국 어디엔가 합격을 하면 학생 자신도 해당 학과가 자기가 갈 수 있는 최선의 학과라는 것에 납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알고리즘이 처음 소개된 1962년에는 수학적으로는 정확하지만 이런 방식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명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한국에는 수십만 명의 수험생과 200여 개의 대학이 있는데, 이제는 교육부 컴퓨터에 수험생은 가장 가고 싶은 대학과 학과를 순서대로 입력하고, 각 대학은 뽑고 싶은 학생 기준을 입력하면 교육부가 게일-섀플리 알고리즘을 돌려서 합격자를 발표하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 됐다.

수능 점수로 하는 정시는 물론이고 학생부를 위주로 하는 수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수시에서는 정시보다는 많지만 여전히 지원할 수 있는 학과가 6개로 제한돼 있다. 이 역시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무제한 지원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이 현재의 기술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런 우수한 매칭이론을 현실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아마도 요행을 바라는 대학과 수험생 양측의 심리 때문일 것이다. 매칭의 알고리즘은 모든 학생이 자기의 실력에 정확히 맞는 대학 학과에 합격시켜주게 된다. 그런데 대학 입시에서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실력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가고자 하는 요행을 바라기 때문에 이런 정확한 제도를 원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자신의 대학보다 훨씬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학생이 운이 나빠서 자기 대학으로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대입 지원 횟수를 늘리고 싶지 않아하는 면이 있다.

그런데 이런 요행을 바라는 마음은, 학생이 운 좋게 실력보다 좋은 대학에 갈 확률만큼 운이 나빠서 실력보다 못한 대학에 갈 확률도 동시에 존재한다.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의 실력에 딱 맞는 대학에 합격하는 제도가 합리적인 제도인 것이다. 자신의 실력에 정확히 맞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는 매칭 제도를 활용한다면 대학 입시에서 불안감은 많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수능시험에서 하나 더 틀리면 합격하는 대학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학과 정도가 바뀐다고 생각하면 사교육 열풍도 약해질 것이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1991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게임이론의 권위자로 『경제학 비타민』 『인생을 바꾸는 게임의 법칙』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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