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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늦었지만 불체포 특권 포기 당연…돈풀기 주장은 부적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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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실질심사 받겠다” 이재명, 다른 구태도 벗어나야

세수 줄어 나랏빚 느는데 추경·기본소득 또 꺼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늦었지만 당연한 처사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윤석열 정권이 체포동의안으로 민주당의 균열을 노리는 것 같아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대선 후보였고 국회 다수당의 대표인 그가 각종 의혹으로 수사를 받으면서 불체포 특권 뒤에 숨은 것 자체가 애초 명분 없는 일이었다.

이 대표 체제 이후 민주당은 자당 관련 의원들의 체포동의안을 모두 부결시켰다. 지난해 12월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부터였다.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도 일부 이탈표가 나왔지만 부결됐었다.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윤관석·이성만 의원 건도 최근 부결됐다. 이 대표 스스로 지난 대선 때 불체포 특권 폐지를 공약해 놓고 민주당이 제 식구 감싸기를 거듭하자 ‘방탄 정당’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 출신 무소속 하영제 의원의 체포동의안은 가결됐었다. 이 대표가 특권 포기 의사를 밝혔으니 민주당은 앞으로 체포동의안을 부결할 명분이 없다. 하 의원은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구속을 면했는데, 여야 모두 일반 국민과 같은 절차를 따르면 된다. 민주당이 혁신위원회를 꾸리는 만큼 이번을 시작으로 구태와 절연해야 한다.

이 대표는 “민생, 경제, 정치, 외교, 안전과 국가 그 자체인 국민을 포기한 ‘5포 정권’”이라고 현 정부를 비난했다. “압수수색, 구속기소, 정쟁에만 몰두하는 ‘압·구·정’ 정권”이라고도 했다. 야당 대표가 정부·여당을 견제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눈 떠보니 후진국’이라거나 ‘정치가 통치와 지배로 대체됐다’는 식의 과격하고 일방적인 공격은 적절치 않다. 협치의 책임은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에도 있다. 의석수를 앞세운 일방적 법안 통과 등에 대한 자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대표가 35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을 거듭 요구하고 기본소득을 강조한 것은 내년 총선을 겨냥한 포퓰리즘에 시동을 거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이 대표는 추경 사용처에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지역화폐예산 증액을 넣었다. 국채를 늘려서라도 재정이 경제 회복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기업 실적 둔화 등으로 세수가 줄면서 올 들어 4월까지 정부 총수입은 지난해 동기보다 34조1000억원 줄었다. 올 1분기 나라 살림 적자만 54조원에 달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기존 사회보장제나 현금복지에 대한 조정 없이 기본소득만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민주당은 돈 풀 궁리 대신 나랏빚을 일정 수준으로 관리하는 재정준칙 처리부터 협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