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법정서 전처 9번 이기고도 아들 못봐" 4년째 생이별 아빠의 눈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019년 이혼 소송이 진행중이던 시기 성재혁씨가 미국 시애틀 근교에서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성재혁씨

지난 2019년 이혼 소송이 진행중이던 시기 성재혁씨가 미국 시애틀 근교에서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성재혁씨

“그래도 아들을 못 볼 것 같아요….”
법원의 결정문을 뒤늦게 받아든 성재혁(43)씨는 지난 17일 통화에서 말끝을 흐렸다. 3일 전, 서울가정법원 신청25단독 김봉남 판사는 성씨에게 7살 아들을 반환하라는 법원의 이행 명령을 위반한 성씨의 전 부인 조모(42)씨에게 감치 30일을 명령했다. 김 판사는 “유아의 인도를 명령받은 사람으로서 헤이그아동탈취법 제13조 2항에 따른 제재를 받고도 30일 이내에 정당한 이유 없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조씨의 감치 소식에도 성씨의 목소리는 밝지 않았다. 소송엔 이겼지만, 4년째 생이별 중인 아이를 결국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성씨의 비극은 2019년 4월 시작됐다. 미국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며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부인 조씨가 다툼 도중 폭력을 휘두르자 경찰에 신고했다. 가정폭력 혐의로 체포된 조씨와 더는 가정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성씨는 이혼을 택했고, 이혼 과정에서 서로의 동의 없이 아이를 미국 밖으로 데려가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그해 6월 조씨가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간 뒤 돌아오지 않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미국 경찰이 성씨의 아들을 실종 아동으로 뷴류하면서 전미실종 및 학대 아동센터(NCMEC)엔 성씨의 아들과 조씨의 사진과 이름이 등록됐다. 사진 성재혁씨

미국 경찰이 성씨의 아들을 실종 아동으로 뷴류하면서 전미실종 및 학대 아동센터(NCMEC)엔 성씨의 아들과 조씨의 사진과 이름이 등록됐다. 사진 성재혁씨

아들과 생이별한 성씨는 서울가정법원에 아동반환 청구소송을 냈고, 법원은 성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법원은 공동양육자의 의사에 반해 아이를 유치해 양육권을 침해했으므로 국제적 아동탈취의 민사적 측면에 관한 협약과 헤이그아동탈취법에 따라 조씨가 아이를 반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021년 4월 대법원이 조씨의 재항고를 기각했다. 성씨는 아이와 다시 지낼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조씨는 법원 결정을 따르지 않았다. “의료 혜택이 큰 한국에 있어야 한다. 아빠는 아이를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아이를 잊었다”는 것이 조씨의 주장이었다. 이후 성씨는 아동반환 의무를 이행하라며 서울가정법원에 간접강제 신청을 했고, 조씨는 과태료 400만원과 15일 감치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조씨는 끝내 법원 결정을 무시한 채 버텼다.

대법 판결에도 이행명령 위반

지난해 4월 대구지방법원의 아동 인도 집행도 실패로 돌아갔다. 당시 성씨의 아들이 자기 의사로 본인 이름과 엄마 이름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아빠 이름이나 얼굴에 대해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다는 게 법원의 설명이다. 법원은 “아이가 엄마와 살고 싶다고 대답해 이차적으로 대리인 변호사가 물었더니 엄마와 살고 싶다고 일관적으로 진술했다. 사건본인 의사에 반해 인도를 집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재판 예규 중 ‘유아 인도를 명하는 재판의 집행절차’는 유아가 의사능력이 있는 경우, 유아 자신이 인도를 거부하는 때는 집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법원에 간접강제를 신청했다. 그러나 아동반환 청구소송과 두 차례의 간접강제 신청에서 모두 승소하며 총 9번의 관련 판결을 받아내고도 바뀌는 건 없었다. 조씨는 두 차례의 과태료와 감치 결정에도 여전히 아이를 돌려주지 않았고, 법원도 아이를 돌려받기 위한 강제적 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았다.

성씨는 아이가 ‘부모따돌림’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법원이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모따돌림은 이혼 과정에서 양육권자가 자녀에 영향을 미쳐 결국 자녀들이 떨어져 사는 엄마나 아빠에게 등을 돌리게 되는 현상이다. 조씨가 자신과 아이의 만남을 막았고,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어지며 아이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성씨는 “미국에선 아들을 실종자, 조씨를 유괴범으로 수배까지 했다”며 “9번이나 아이를 돌려받으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는데 집행관과 법무부, 법원이 모두 책임을 돌리는 사이 아이를 위한 법은 실효성을 잃었다. 기계적 관행으로 단절된 시간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지난해 7월 국회에 제출하는 연례보고서에 한국을 헤이그국제아동탈취협약 의무 불이행 양상을 보이는 국가로 분류했다. 부모 중 한쪽이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해 한국에서 아동반환 재판이 진행된 경우, 미국인인 부모가 재판에서 이기고도 1년 이상 아이를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30% 이상이라는 점이 주된 이유일 것으로 법무부는 추정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미 국무부와 대화 채널을 개설해 협조하고 법원과도 협의하면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인 이현곤 변호사는 “유아 인도 집행방법에 대한 세부 규정이 없다 보니 집행관은 보수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간접강제만 하게 되고, 판결의 실효성에도 의문 부호가 달린다”고 진단했다. 이어 “법원에서 집행과정과 관련한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집행과정에 심리 상담사 등을 투입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