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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또 77명 적발된 산업스파이, 솜방망이 처벌로 막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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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창민 관세청 기술유출범죄 수사팀장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세관에서 첨단기술 유출 적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수사팀은 포스코 특허기술을 도용한 장비(에어나이프)를 수출하려던 일당 5명을 검거해 특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송치했다. [뉴시스]

신창민 관세청 기술유출범죄 수사팀장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세관에서 첨단기술 유출 적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수사팀은 포스코 특허기술을 도용한 장비(에어나이프)를 수출하려던 일당 5명을 검거해 특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송치했다. [뉴시스]

정부서 100억원 지원한 기술 파일 중국에 빼돌려

오늘 대법원 양형위서 미국식 엄벌 기준 참고해야

산업스파이가 또 77명 붙잡혔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특별단속 넉 달 만에 올린 실적이다. 이번에 적발한 35건 중 8건(22.9%)은 우리 기술을 해외로 유출한 사례다. 숫자 못지않게 놀라운 건 기술을 빼낸 과정이다. 한국 기업의 중국 법인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직원은 중국의 정보통신 기업으로 이직하면서 회사의 영업비밀을 사진 촬영해 들고 간 혐의로 붙잡혔다. 2015년부터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산하 연구소에서 일해 온 중국인 연구원은 의료용 로봇 관련 기술이 담긴 파일 1만여 개를 중국으로 보낸 사실이 적발됐다.

이들이 우리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린 경위를 보면 앞으로도 얼마든 재발하리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한국인의 경우 중국 법인으로부터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 등 수억원을 받기로 한 것으로 조사됐다. 로봇 기술을 유출한 중국인은 중국에서 ‘천인계획’의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첨단 분야 우수 인재 1000명을 지원한다는 이 사업을 두고 서방 국가에선 산업스파이를 양산하는 프로젝트라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이번에 적발된 중국인도 한국에서 확보한 핵심 기술 자료를 제출하고 혜택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불법 취득한 정보를 중국 정부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돈을 지원하면 해외의 첨단 기업에서 일하는 중국인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우리 당국이 치밀한 방지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피해는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유출된 기술 개발 과정에 우리 정부가 100억원을 지원했다니 기막힌 노릇이다.

이렇게 해외로 빼냈다가 지난 5년간 국정원에 적발된 사안만 93건이다. 피해액은 25조원에 이른다. 특히 반도체 분야가 핵심 타깃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핵심 기술 자료를 노린 범죄가 잇따른다. 피해가 날로 심각해지자 전경련은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기술 유출 범죄의 양형 기준을 개선해 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우려다. 현재의 양형 기준은 영업비밀 침해 행위의 기본 징역형이 1년~3년6개월에 불과하고 ‘진지한 반성’ 등이 감경 요소가 돼 실형이 선고되는 비율은 극히 낮다. 위험부담이 적으니 기술을 빼돌려 큰돈을 벌어 보자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구조다.

이에 비해 미국의 양형 기준은 피해액에 따라 최대 33년9개월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미국 기준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평균적으로 10년1개월~21년10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들어 대통령실과 검찰·경찰·특허청·산업통상자원부가 일제히 강력한 처벌을 주장하고 나섰다. 오늘 열리는 대법원 양형위원회 전체회의에선 피해가 커지는 산업스파이의 위험성을 고려해 양형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