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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조 정책금융 쏟는다…美·中 신냉전에 낀 韓반도체 구하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반도체 패권 전쟁에 한국 정부도 뛰어들었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8일 오전 열린 ‘반도체 국가전략회의’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다. 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반도체 경쟁은 산업 전쟁이다. 그리고 국가 총력전”이라고 말했다.

과장이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반도체는 지난해 기준 한국 수출의 18.9%를 차지하는 1위 기간 산업이다. 다른 주력 산업인 자동차(7.9%), 석유ㆍ화학(7.9%), 선박(2.7%) 수출을 모두 합쳐도 반도체 하나를 못 따라잡는다. 이런 반도체 수출이 올해 들어 40% 가까이 꺾였고(전년 대비 감소), 충격은 한국 경제 전체로 번지는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반도체 국가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반도체 국가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커지는 위기감 속에 정부는 실탄을 더 쏟아붓기로 했다. 이날 산업부는 올해 5000억원을 시작으로 오는 2027년까지 총 2조8000억원 규모로 정책금융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고금리 속 투자 자금 확보가 어려운 기업에 ‘마중물’ 역할을 할 돈이다. 전력 반도체, 차량용 반도체, 첨단 패키징 같은 유망 기술 지원 사업을 대상으로 1조4000억원 규모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도 추진한다. 예타는 나랏돈을 대규모로 투입하기 전 사업성을 미리 평가하는 절차를 뜻한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 초격차를 유지해나기 위해 PIM(메모리에 연산 기능을 더한 차세대 반도체) 설계 기술과 첨단 소재ㆍ부품ㆍ장비 개발 연구에 2028년까지 4000억원을 투자한다.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사업에도 1조96억원을 투입한다.

소재ㆍ부품ㆍ장비와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춘 3000억원 규모 반도체 전용 펀드가 올 하반기 선보인다. 경기 용인시에 반도체 클러스터가 제때 들어설 수 있도록 전력 공급, 인허가도 신속하게 처리하기로 했다. 팹리스 시제품 제작에 대한 지원은 대폭 늘어난다.

팹리스와 소재ㆍ부품ㆍ장비 국산화 과정에서 ‘요람’ 역할을 한 첨단반도체기술센터(ASTC)를 민관 합동으로 구축한다. 미국 정부에서 설립하기로 한 국가반도체기술센터(NSTC)와의 협력도 구체화한다. 올해부터 2032년까지 10년간 현장 수요 맞춤형 인력 양성 사업에 2228억원을 투입한다. 반도체 특성화 대학(원)도 늘릴 예정이다.

이미 도입한 ▶투자세액공제율 8%에서 15%(중소기업은 최대 25%) 인상 ▶인허가 타임아웃제(특별한 이유 없이 60일 내 인허가 절차를 진행하지 않으면 허용한 것으로 간주) ▶용적률 완화 특례 등은 차질 없이 시행되도록 정부가 지원에 나선다.

지난해 7월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 올해 3월 국가첨단산업 육성 전략 등에 이어 정부는 이날 추가 대책을 내놨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급변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ㆍ기술 정책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종전에 발표한 반도체 정책을 업그레이드해 반도체 초강대국 도약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다만 이런 정부 전략으로 ‘한국 반도체 구하기’에 성공할지는 예단하기 이르다. 미국과 중국이 펼치는 물량전이 워낙 막강해서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와 배터리 등을 국가전략물자로 규정하고 대규모 재정ㆍ세제 지원과 수출 통제를 골자로 하는 반도체 지원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산 제품으로부터의 ‘독립’이 목표다.

중국 정부도 이에 맞서 지난 2월 ‘디지털 중국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반도체 제조 기술, 장비 국산화에 속도를 내는 내용이다. 미국의 대(對)중국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 조치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다. 해마다 급증하는 중국 내 데이터 수요에 맞춰 기반 설비 확충, 디지털 핵심 산업 육성, 디지털 전환 투자 확대 등도 추진한다. 중국 정부는 디지털 경제 규모를 2030년 100조 위안으로 키운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한국 돈으로 약 1경8000조원 수준이다. 2000조원 안팎인 한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과 견줘 9배에 달하는 규모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조상현 원장은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후 미국ㆍ중국은 물론 유럽연합(EU)까지 자국 중심의 공급망 확충을 정책 우선순위에 올려놓고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을 대상으로 ‘보조금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공격적인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 원장은 이어 “다른 국가는 기관총을 들었는데 한국이 소총으로 전쟁해서야 되겠나. 이번 방안에 이어 과하다 싶은 특단의 대책의 계속 제시해야 수출ㆍ금리 등 악재만 쌓인 현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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