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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사우디와 스포츠 워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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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송지훈 기자 중앙일보 스포츠부 차장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

‘스포츠 워싱(sports washing)’은 스포츠와 화이트 워싱(white washing·눈속임)의 합성어다. 특정 국가 또는 집단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해 스포츠팀을 운영 또는 후원하거나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 용어는 구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독재국가 아제르바이잔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지난 2015년 처음 등장했다. 카스피해 인근 산유국인 아제르바이잔은 막대한 오일 머니를 축적했지만 부와 권력의 편중, 인권 침해 등 각종 논란을 일으키며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당시 아제르바이잔은 갓 출범한 제1회 유러피언 게임을 유치하고 수도 바쿠에서 성대하게 치렀다. 이 대회가 스포츠를 활용한 화이트 워싱의 전형적 사례로 지목받아 ‘스포츠 워싱’이란 표현이 탄생했다. 이후 아제르바이잔은 축구, 배구, 태권도, 레이싱 등 여러 종목 국제대회를 꾸준히 개최해 왔다. 영국 BBC는 “검색 엔진에 ‘아제르바이잔’을 입력하면 나오는 결과물은 각종 스포츠 경기 관련 내용이 대부분”이라면서 “부패, 인권 탄압 등의 단어는 어느새 저 멀리 밀려났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가 스포츠 워싱 논란의 중심에 섰다. 언론인 살해, 반체제 인사 감금, 여성 인권 탄압 등으로 물의를 빚은 가운데 스포츠에 파격적인 투자를 이어가는 모양새가 아제르바이잔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명문구단(뉴캐슬)을 인수하고, 글로벌 골프대회(LIV)를 창설하고, 스타 플레이어(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자국 리그에 영입하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 사우디 국부 펀드는 자국을 스포츠 글로벌 허브로 키운다는 목표 아래 총 378억 달러(49조20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7일 사우디발 스포츠 빅이슈 두 가지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LIV 골프가 그간 대립각을 세우던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와 전격 합병했다. 스페인 프로축구 명가 레알 마드리드의 간판 공격수 카림 벤제마(프랑스)는 연봉 2억 유로(2800억원)를 받기로 하고 사우디 클럽 알 이티하드 유니폼을 입었다. ‘스포츠로 이미지를 산다’는 비판에도 상상을 뛰어넘는 자금력을 앞세운 사우디의 발걸음이 계속 빨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