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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평등하지 않은 세상’이라는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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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성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윤성민 정치에디터

윤성민 정치에디터

세계적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한 주상복합 아파트가 2027년 서울 서초구에 들어선다. ‘더 팰리스 73’이다. ‘73’은 73세대만 짓는다는 뜻이다. 한 세대당 분양가가 100억~400억 원에 달한다. 지난 4월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 평균이 10억2200만 원이었다. 최근 분양을 시작했는데 광고 문구가 논란이 됐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천민자본주의’, ‘물질 만능주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홈페이지가 다운될 정도였다.

광고는 대중의 욕망을 겨냥한다. 2001년 광고에서 배우 김정은씨가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라고 외쳤다. 한동안 한국 사회에서 그 문구가 덕담으로 사용됐다. 외환위기의 끄트머리였다. 경제적 몰락 뒤에 부자로의 반등을 꿈꿀 때였다. 그 광고를 한 곳이 단기 부채를 권하는 신용카드 회사였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으로 2002년 카드 대란이 발생했고 수백만 명의 신용불량자가 나왔다. 빚으로 부풀려진 ‘부~자’가 되고 싶다는 꿈의 거품은 곧 꺼졌다.

‘더 팰리스 73’ 광고도 대중 욕망을 겨냥했다. 코로나19로 사회 양극화는 더 심해졌고, 불평등한 사회의 상단으로 가려는 욕망은 더 커졌다. 유튜브엔 부자들의 집을 소개하는 콘텐트가 넘친다. 한국에서 부자의 일차적 상징은 주택이다. 유럽 상류층이 취향을 통해 다른 계층과 자신들을 구별짓기 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경제학자 케빈 코피 찰스와 에릭 허스트는 미국의 백인과 흑인의 재산, 지출 등의 차이를 연구한 적이 있다. 흑인들은 수입이 비슷한 백인보다 더 많은 돈을 자동차에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차별에 대한 반대 작용으로, 보이는 자산에 더 돈을 쓰는 것이다. 한국 부자들이 주택을 과시하는 것은 압축 성장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셜미디어에 쏟아진 비판처럼 ‘더 팰리스 73’ 광고는 불편하다.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20대를 다룬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가 출간된 지 10년이 지났다. 이제는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고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일까. 정의는 이성이나 본능의 산물이 아니라 진화가 낳은 결과물이다. 데이비드 흄의 얘기다. 이럴 때면 한국 사회는 퇴행하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