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직자와 술(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황희와 더불어 세종조의 쌍명상으로 꼽혔던 허조는 평생을 첫닭이 운 뒤에 일어난 적이 없다고 알려질 만큼 절도를 지킨 선비로 유명하다. 그래서 후세의 사가들이 공직자의 수신제가를 논할 때 으레 그를 하나의 모델 케이스로 든다.
그 허조에게 이런 일화가 있다. 하루는 그가 밤중에 단정히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읽고 있는데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마치 돌로 빚어놓은 것처럼 꼼짝않고 앉아 있는 허조가 조는 것으로 생각하고 방안의 쓸만한 물건을 모조리 훔쳐갔다.
뒤늦게 도둑이 든 것을 안 집안 식구들이 눈을 뜨고 있으면서 어찌 도둑을 막지 않았느냐고 분통해 하자 허조는 이렇게 말했다.
『이보다 더한 도둑이 마음 속에서 싸우고 있는데 어느 여가에 바깥 도둑을 걱정하겠는가.』 옛 선비들은 이처럼 수신을 소중한 덕목으로 여겼다.
예부터 공직자들이 지켜야할 수신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돈(물욕)이요,둘째는 술이요,셋째는 여색이다. 물론 이 세 가지는 꼭 공직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공직에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로 인해 패가망신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러나 특히 공직자에게 있어 이 세 가지를 경계하는 것은 그만큼 그 유혹에 빠질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사회적 통념은 돈과 여색에 대해서는 비교적 엄격한 편이지만 술에 대해서 너무 관대한 편이다.
공직자들이 주석에서 치고받는 추태를 연출해도 쉬쉬하며 그대로 덮어두고,장관이 국가의 중요한 회의석상에서 술을 지나치게 마시고 실수해도 그저 「애교」로 받아주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다.
『하늘에 제사 지내고 사당에 제사지내는 때도 술이 아니면 신령이 흠향을 하지 않는 것이고,군신과 친구 사이에도 술이 아니면 좌석이 아름다워지지 않는 것이고,싸움을 하고 서로 화해를 하는데도 술이 아니면 성사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술은 또한 일을 망치기도 하기 때문에 함부로 마셔서는 안 된다.』
『사기』에 나오는 말이다.
신문을 보면 현역 국회의원과 판·검사들이 폭력조직의 보스들과 술자리를 같이했는데 그 술판에서 끔찍한 싸움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선비는 배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매지 않는 법이다. 아무리 술이 좋기로서니 어찌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폭력배들과 술자리를 같이할 수 있단 말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