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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한전, 빌딩 내놓고 사장 사의…전기료 인상없인 ‘미봉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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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호 01면

정승일

정승일

38조원. 지난해부터 올 1분기까지 한국전력공사가 떠안은 천문학적인 손실 규모다. 한전이 12일 내놓은 대대적인 자구 계획과 정승일(사진) 사장의 사의 표명도 이 같은 경영 환경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충분한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이 동반되지 않으면 자구안이나 사장 교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자구안과 함께 전기요금을 적절한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 사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오늘(12일) 자로 한전 사장직을 내려놓고자 한다”고 밝혔다. 여권에서 한전 경영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한 지 15일 만이다. 정 사장은 한국가스공사 사장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등을 거쳐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5월 한전 사장으로 임명됐다. 임기는 내년까지다.

여권으로부터 ‘뼈를 깎는 쇄신’을 요구 받던 한전은 이날 25조7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내놨다. 올 초 발표한 20조1000억원에서 5조원가량 늘어난 수치다. 수도권 대표자산인 여의도 남서울본부를 매각하고, 매각이 여의치 않은 강남 한전아트센터 등은 임대키로 했다. 한전은 ‘매각 가능한 모든 부동산을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한전은 “추가 임대자산도 지속 발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임직원 급여·성과급 일부를 반납한다. 2직급(부장급) 이상 임직원은 임금 인상분 100%를, 3직급(차장급) 이상 임직원은 50%를 반납한다. 성과급은 경영평가 결과가 확정되는 다음 달 1직급(실장급) 이상은 전액, 2직급 이상은 50% 반납키로 했다.

하지만 이번 자구안만으로 한전의 자금난을 해소하긴 어렵다. 한전은 올 1분기에만 6조177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연료비와 전력 구입비가 크게 증가한 탓인데, 지난해 한 해 발생한 32조원대 영업손실까지 더하면 1분기 기준 누적 적자는 벌써 38조원을 넘어섰다. 그런데 이번 자구책이 오히려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창의융합대학장은 “예컨대 매각 대상인 남서울본부는 지금도 한전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만약 매각 이후 사무실을 임대해서 쓰게 된다면 조삼모사가 될 수 있다”며 “당장은 큰 목돈이 들어올 수 있지만, 길게 보면 오히려 국가적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결정”이라고 짚었다.

“정치 논리 배제, 전기료 인상 폭 결정해야”

전문가들은 전기요금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소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앞서 산업부는 한전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올해 킬로와트시(㎾h)당 51.6원 인상이 필요하다고 봤지만, 올 1분기에 13.1원 올리는 데 그쳤다. 당정은 이르면 다음 주 초 2분기 인상 폭을 결정할 계획이지만, 이마저도 7원가량 인상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강더위가 예고된 여름철이 다가오기 전에 전기요금을 최소 1분기 인상 폭(13.1원)보단 크게 올려야 한다”며 “3·4분기로 갈수록 총선 이슈와 맞물리면서 인상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유승훈 학장도 “한전이 방만해서 생긴 문제가 아닌데도 자구 노력만 요구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밖에 되지 않는다”며 “적자 해소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결국 전기요금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다. 정치 논리를 배제하고 인상 폭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전과 함께 손실 수렁에 빠진 한국가스공사도 이날 15조4000억원 규모의 추가 자구안을 발표했다. 임직원 임금 인상분을 반납하고 국내 가스 수급 안정에 직접 영향이 없는 사업비는 이연하거나 축소할 계획이다. 올해 1분기 가스공사의 민수용(주택용) 누적 미수금은 지난해 말보다 3조원 늘어난 11조6000억원에 이른다. 미수금은 회계 장부상 자산이지만 가스공사가 수입한 가스 가격보다 판매 가격이 낮아서 발생한 일종의 영업손실이다. 코로나19, 글로벌 공급망 붕괴 등으로 가스 수입가격은 치솟았지만 국민 부담 경감을 위해 가스요금을 동결한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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