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포렌식 참관중 쿨쿨 잔 변호인…"2년전부터 유행한 신종 기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2021년 1월 출범 후 처음으로 고위 경찰 간부의 뇌물수수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2021년 1월 출범 후 처음으로 고위 경찰 간부의 뇌물수수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A경무관의 억대 뇌물수수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는 지난 2월 21일 A경무관의 휴대전화와 뇌물 공여 혐의를 받는 이모 대우산업개발 회장의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 했다.

하지만 공수처는 3개월 가까이 휴대전화 분석(포렌식)을 못 하고 있다. 포렌식을 하려면 변호인 참관이 필요한데, 특히 이 회장 측은 “참관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도 일정을 계속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고위 경찰 간부가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건 도의적으로 부적절하다”란 비판과 “헌법에 보장된 방어권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것”이란 옹호가 엇갈린다.

공수처 “변호인 참관한다 해놓고 차일피일 미뤄”

이 사건 피의자뿐 아니라 참고인들도 같은 방식으로 수사에 불응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포렌식을 강행하기도 여의치 않다.

형사소송법 121조와 219조 등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압수물에 대해 선별·이미징 등을 할 때 당사자 등이 참관할 수 있다. 대법원 판례(2020도 10729 등)도 당사자 참관을 보장하지 않으면 증거능력이 배제된다고 돼 있다. 만약 압수물이 다른 피의자와 관련이 있으면 그 피의자의 참관도 보장해야 한다.

이 같은 ‘변호인 참관 지연’ 또는 사실상의 참관 거부에 대해 공수처 관계자는 “정당한 방어권 행사로 볼 수 없다. 계속 나와달라고 독촉하는 수밖에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A경무관은 지난해 이 회장 등으로부터 경찰의 대우산업개발 수사를 무마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3억원의 뇌물을 받기로 약속하고 이 가운데 1억2000만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를 받는다. A경무관과 이 회장 측 모두 ‘참관 지연’에 대한 의견을 묻는 전화와 문자메시지에 답변하지 않았다.

검·경도 볼멘소리 “2~3년 전부터 나타난 ‘수사방해’ 기술”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검찰도 압수수색 후 휴대전화 포렌식 과정에서 당사자의 참여권 보장과 관련해 애를 먹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검찰도 압수수색 후 휴대전화 포렌식 과정에서 당사자의 참여권 보장과 관련해 애를 먹고 있다. 연합뉴스

볼멘소리는 공수처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한 대검찰청 간부는 “검찰·공수처·경찰 막론하고, 피의자들이 새로운 방식의 수사방해 기술이 유행처럼 활용하고 있다”며 “2~3년 전부터 이런 현상이 나타났고 최근 들어 잦아졌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간부도 “포렌식에 참관하기로 해놓고 참관 당일에 ‘깜빡했다’ 등의 이유를 대면서 펑크 내는 사람도 있다”며 “변호인이 참관을 와도 문제인데, 갑자기 ‘재판 가야 한다’며 자리를 뜨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라고 하소연했다. 한 수도권 검찰청에선 변호인이 참관 도중 잠을 자거나 전화통화를 하며 시간을 끈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런 사례들이 발생하면 검찰은 다시 포렌식 일정을 잡을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게까지 된 데는 일부 대형 로펌 또는 고위 검사 출신 변호사 등의 ‘코칭’이 한몫했다고 한 검찰 간부는 귀띔했다. 포렌식이 지연되면 수사 전반이 지연될 수밖에 없고, 증거인멸 가능성도 키운다는 게 수사기관의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대책 마련을 요구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의자들의 권한 남용으로 볼 수 있다”며 “몇 번 넘게 연기하거나 일정 시간 이상 늦추면 참관 없이도 포렌식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법적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수사당국 내에선 “압수수색 당사자 등이 적극적으로 참관하면서 협조하려고 해도 포렌식을 진행할 시설과 인력이 부족해 진행이 지연되는 문제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검찰청 검사는 “압수수색을 하고 몇 달 뒤 포렌식 일정을 잡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