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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장의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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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안효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안효성 증권부 기자

안효성 증권부 기자

별다른 이유 없이 수년째 주가가 꾸준히 올랐다. 주식시장이 급락했던 지난해에도 상승세가 멈추지 않아 ‘돈 복사기’로 불렸다. 일부 증권사는 과도한 주가 상승이라며 매도 리포트를 냈다. 평상시라면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에 베팅해 공매도했겠지만, 이 종목만은 그렇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작전설’이 돌았지만, 금융당국의 별다른 감독도 받지 않았다. 주가는 좀처럼 꺼지지 않다가 갑작스레 급락해 4일 만에 주가가 75% 하락했다. 지난 24일 무더기 하한가를 기록한 8종목 중 하나인 삼천리 이야기다.

무더기 하한가 종목들은 특별한 호재 없이 수년간 꾸준히 올랐다. 최근 3년간 수익률은 대성홀딩스(1234%), 선광(1056%), 삼천리(590%) 등이다. 주가가 다락 같이 올랐지만, 금융당국의 감독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금융당국 책임론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27일 주가조작 의혹을 받는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뉴스1]

금융당국은 지난달 27일 주가조작 의혹을 받는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뉴스1]

금융당국이 뼈아파 해야 할 게 또 있다. 개인투자자들의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등쌀에 떠밀린 채 애매한 상태로 남아있는 공매도 부분 재개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공매도는 코스피 200과 코스닥 150 등 대형 종목에 한해서만 부분적으로만 허용되고 있다. 무더기 하한가를 맞은 8종목 중 5개 종목은 공매도가 불가능했고, 공매도 가능한 3개 종목(하림지주·다우데이타·선광) 중 1개 종목도 공매도가 가능해진 건 지난달 19일 이후다.

이렇다 보니 공매도가 있었다면 주가 급락의 충격이 훨씬 작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공매도는 주가에 거품이 끼었을 때, 거품을 완화해주는 순기능이 있다. 거품이 한 번에 터져 큰 손실을 안기는 것보다 공매도를 통한 주가 조정이 훨씬 건강할 수 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도 2일 “차액결제거래(CFD)가 일부 작전세력 등에 의해 유동성이 낮은 종목, 공매도 금지 종목 등에 악용될 경우 시세상승 등 불공정거래에 취약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제2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세스 클라만 바우포스트그룹 회장은 2010년 언론 인터뷰에서 “공매도는 시장의 경찰이다. 공매도가 사라진다면 주가는 훨씬 더 상승할 수 있지만, 공매도를 없애는 게 사회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매도가 금지될 경우 금융사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주식의 무분별한 상승으로 인한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이유다. 그의 말대로 시장의 경찰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종목은 주가 조작의 표적이 됐고, 주가 급락으로 개인 투자자들은 더 큰 고통을 받게 됐다. 공매도의 ‘공’자에도 치를 떠는 개인투자자들도 공매도의 순기능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