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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신중해야 할 대통령의 외교 언사…취지 오해받는 일 없도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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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석열 대통령.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 사진 대통령실

“100년 전 일로 무조건 무릎 꿇어라 할 수 없어” 논란

‘미래지향적 관계’ 중요하지만 국민 정서도 감안해야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를 둘러싼 정치권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그의 일본 관련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은 “수십 년간 일본으로부터 침략당해 고통받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결코 해선 안 될 발언”(이재명 대표), “일본 총리의 망언이라고 비판해도 모자랄 지경”(박용진 의원)이라고 들끓었다. 반면에 대통령실은 ‘100년 전의 일’ 언급에 대해 “이런 식의 접근이 미래 한·일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라며 “안보 협력이 긴요한 상황에서 ‘무릎을 꿇지 않으면 두 나라가 관계 개선이 절대 안 된다, 어떠한 일도 안 된다’란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말씀”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설명대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강조한 발언의 취지엔 공감할 부분이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한국형 핵우산 문서화’ 등 무거운 과제를 안고 미국으로 향하며 한·일 협력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윤 대통령의 생각도 이해한다. 하지만 과거의 한일병합이나 일제의 잔혹한 수탈 등 모든 일을 불문에 부치겠다는 뜻으로 발언한 것처럼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해도 외교 관련 발언, 특히 민감한 한·일 관계 언급엔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감정도 섬세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일 관계에 대한) 설득은 충분히 했다”거나 “유럽에선 참혹한 전쟁을 겪고도 미래를 위해 전쟁 당사국들이 협력하고 있다”며 유럽 상황과 한·일 관계를 병렬적으로 비교한 데에도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국민이 있다.

이번엔 특히 집권 여당의 어설픈 감싸기가 논란을 증폭시킨 측면도 있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무릎 꿇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윤 대통령이 아니라)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다로 해석해야 한다”며 “번역 과정의 오역을 갖고 반일 감정을 자극하고 나섰다”고 야당을 비판했다. 하지만 직접 기사를 쓴 WP 기자가 인터뷰 녹음 내용을 토대로 “저(윤 대통령)는 받아들일 수 없다”가 맞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지난해 9월 윤 대통령 뉴욕 출장 당시의 비속어 논란이나 미국의 도·감청 의혹처럼 대통령을 감싸려는 여권의 엇박자 해명으로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일이 또 반복될까 우려스럽다. 미국 방문 기간 중에도 윤 대통령은 민감한 이슈에 대해 발언할 기회가 많을 것이다. 이번 WP 인터뷰 논란이 좋은 예방주사가 되길 바란다. 야당 역시 대통령의 국익 외교에 흠집만 내려는 지나친 정치 공세는 자제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