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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콧물에 피가…"오전 환기도 자제" 미친 날씨에 독해진 이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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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에서 꽃가루가 물 위에 떠있는 모습. 정상원 인턴기자

서울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에서 꽃가루가 물 위에 떠있는 모습. 정상원 인턴기자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20도가 넘는 따뜻한 날씨 속에 바람을 타고 하얀 꽃가루가 여기저기 날렸고 샛강 수면 위에도 수북하게 쌓였다. 자전거를 타러 나온 유모씨(67)는 “원래 봄이 되면 이곳에서는 꽃가루가 날리는 모습이 보이는데 올해는 유독 그 양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꽃가루 채집기. 국립기상과학원

꽃가루 채집기. 국립기상과학원

알레르기 비염 등을 일으키는 꽃가루가 올봄 들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21일까지 측정된 누적 참나무 꽃가루 양(국립기상과학원의 채집기 한 대에 포집된 누적 양)은 7830개로 이미 지난 봄철(3274개)의 두 배를 넘었다. 이상고온과 건조한 날씨로 인해 꽃가루 날리는 시기가 빨라지고 농도는 더 짙어졌다고 한다. 국립기상과학원이 구리한양대병원 앞에서 꽃가루를 측정한 결과, 알레르기 유발성이 매우 강한 참나무 꽃가루는 지난 4일부터 날리기 시작했다. 지난해보다 9일이나 앞당겨졌으며 최근 10년을 기준으로도 가장 빠르다. 지난 20일에는 하루 기준으로 올해 들어 가장 많은 1415개의 꽃가루가 수집되기도 했다. 그만큼 공기 중에 떠다니는 꽃가루가 많다는 뜻이다.

“비염 증세 심해져…다시 마스크 쓴다”

참나무 꽃가루 광학 이미지. 국립기상과학원

참나무 꽃가루 광학 이미지. 국립기상과학원

꽃가루가 심해지면서 알레르기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서울에 거주하는 신모씨(26)는 “원래 비염 증상이 있었는데 요즘은 가래나 콧물에 피가 섞여 나올 정도로 증세가 급격히 심해졌다”며 “외출할 때 신경이 많이 쓰여서 한동안 안 썼던 마스크를 다시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알레르기 전문가인 오재원 한양대 구리병원 교수는 “예년보다 2배 가까이 환자가 늘어나는 등 올해 유난히 알레르기 비염 환자가 많아졌다”며 “지금까지는 청소년기 환자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초등학교, 유치원 아이들도 많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덥고 건조한 봄, 꽃가루 폭탄 불렀다

참나무 꽃가루 전자현미경 이미지. 국립기상과학원

참나무 꽃가루 전자현미경 이미지. 국립기상과학원

꽃가루 알레르기는 보통 벚꽃 등 봄꽃이 지고 나서 기온이 올라가는 4월 중순부터 심해진다. 봄철 꽃가루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주범은 참나무·자작나무·소나무 같은 ‘풍매화(風媒花)’이다. 벚꽃처럼 곤충이 꽃가루를 전달하는 ‘충매화(蟲媒花)’와 달리 바람을 타고 꽃가루가 운반된다. 이들 꽃가루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데 이 중에서 독성이 강한 참나무 꽃가루는 4월 중·하순에서 5월 초순 사이에 가장 많이 날린다.

하지만, 올해는 이상고온으로 봄꽃 개화 시기가 빨라지면서 꽃가루에 노출되는 시기가 앞당겨졌고, 가뭄에 시달릴 정도로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꽃가루에 노출되는 빈도도 높아졌다. 김규랑 국립기상과학원 연구관은 “올해는 꽃가루 날리는 시기가 예년보다 일주일 정도 빨리 시작됐다”며 “특히 고온 건조한 날에는 꽃가루가 가라앉지 않고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사람들 콧속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도 “일찍 개화가 진행되면서 꽃가루 기간이 늘어나다 보니 꽃가루 알레르기에 노출되는 환자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여기에 황사 등의 영향으로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이 잦아지면서 알레르기 염증 반응을 더 악화시켰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바이러스도 전달…오전에 환기 자제”

황사로 내륙 및 남부 지방의 미세먼지가 '나쁨' 수준을 보인 23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롯데타워가 뿌옇게 보이고 있다. 뉴스1

황사로 내륙 및 남부 지방의 미세먼지가 '나쁨' 수준을 보인 23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롯데타워가 뿌옇게 보이고 있다. 뉴스1

기후 학자들은 온난화의 영향으로 꽃가루의 농도와 독성이 점점 더 강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질수록 꽃가루의 농도와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꽃가루가 위험한 건 단순히 알레르기성 질환을 유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꽃가루는 공기 중에 떠다니면서 각종 바이러스를 매개할 수 있기 때문에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오 교수는 “대기 오염이 심해질수록 꽃가루 독성은 더 올라가고 꽃가루에 바이러스가 묻으면서 전달체 역할까지 한다”며 “꽃가루는 하루 중 오전에 제일 많이 떠다니기 때문에 오전에는 가급적 바깥출입을 삼가고 환기를 자제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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