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공인 통계 엉터리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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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국은행은 달마다 '기업경기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전국의 2000여 개 회사가 현재의 경기와 다음달 경기를 어떻게 보는지를 나타내는 일종의 '경제 체온계'다. 결과가 나오는 날에는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물론 재계.주식시장 등이 모두 민감하게 반응한다. 보통 경기지수가 100 이상이면 경기가 좋다고 보는 사람이 더 많고, 100 이하면 그 반대라는 뜻이다. 그런데 기업이든 사람이든 현재 상황은 나쁘게 보고, 미래는 긍정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은 22일 "한은뿐 아니라 대부분 경기지표의 현재 경기지수는 100을 밑돌 때가 많고, 미래 전망 지수가 현재 지수보다 높아 활용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한은에 따르면 올 3월부터 10월까지 현재 경기지수는 70~80을 맴돌았지만, 미래 지수는 80~90 수준이었다. 현재 경기지수가 미래 지수보다 더 높은 달이 없었던 것이다.

이날 통계청은 민간 전문가들이 경기지수를 포함해 107개 '국가 승인' 통계의 품질을 점검한 결과 614건이 문제가 있어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고 밝혔다. 국가 승인 통계란 정부부처.공공기관.민간단체 등이 만든 통계에 대해 통계청이 공신력을 인정한 것이다.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된 통계엔 투자.부동산.임금처럼 자주 쓰이는 것도 많았다.

이에 따르면 기업투자 관련 통계는 제각각이어서 혼란을 주고 있다. 예컨대 산업은행의 '주요 기업 설비투자 계획조사'는 총설비투자를 '토지 구입, 토지 조성.개발, 건물, 기계장치, 선박.차량, 기타' 등으로 정의한다. 반면 기업은행의 '중소제조업 설비투자 전망조사'는 설비투자를 '건물 및 구조물, 기계장치, 공장용지, 차량 등 기타'로 규정한다.

임금을 놓고도 노동부 통계는 현금 급여를 말하는 반면 엔지니어링진흥협회의 임금은 '현금, 퇴직금충당금, 사회보험' 등을 더한 금액으로 정의해 혼동을 준다는 것이다.

통계의 뼈대인 모집단 자료가 엉성한 사례도 많았다. 산업은행의 기업재무분석 통계는 1999년 전국사업체 기초통계조사 등을 모집단으로 썼고, 선박건조협회 통계는 9개 대형 조선업체로만 모집단을 구성해 나머지 64개 영세 업체의 수주량은 빠졌다.

통계청은 "기획.현장조사.결과분석 등 통계작성 전 과정을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는 곳은 농림부.노동부 정도"라며 "107개 통계 중 68개 통계의 전문성과 담당 인력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통계청은 이번 진단 결과를 토대로 통계 품질 관리를 위한 지침서를 보급하고 개선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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