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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수술 부작용, 미성년이라면 보호자에게 대신 설명해도 된다”

중앙일보

입력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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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미성년자라면 의료진이 수술 부작용 등에 대해 본인 대신 보호자에게 설명해도 된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시술 부작용 책임을 물으며 A양과 보호자가 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일부 받아들인 원심판결을 파기해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A양은 11세 7개월이던 2016년 서울대병원에서 뇌혈관 조영술을 받았다. 모야모야병(특별한 이유 없이 뇌 속 특정 혈관이 막히는 만성 진행성 뇌혈관 질환) 치료를 앞두고 뇌혈관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조영술을 마친 A양은 입술이 실룩거리고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을 보였고, 뇌경색까지 와 영구적인 후유증이 생겼다.

A양과 보호자는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조영술 도중 A양이 두통 등을 호소했는데도 무리하게 조영제를 주입하고 ▶부작용 증상을 보였을 때도 적절한 치료를 지체했을 뿐 아니라 ▶사전에 위험성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19년 1심 재판부는 A양과 보호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료진의 과실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뇌경색은 A양의 모야모야병이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생긴 악결과”라고 봤다. 또 “조영술의 부작용과 합병증에 대해서는 의료진이 사전에 충분히 설명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2020년 2심 재판부는 병원이 A양에게 2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판결했다. 의료진이 A양에게 직접 위험성을 설명한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침습적 시술(절개나 관통이 필요한 시술)을 할 때는 뇌경색 위험이 높아 환아에게 시술 과정을 설명해 긴장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시술 당시 동의서에 A양의 보호자가 서명하긴 했지만, 의료진이 A양의 자기결정권은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동의서에 ‘상기 환자에 뇌혈관조영술을 시행하는 이유’라고 적힌 문구의 옆 칸이 비어있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같은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료법에 따르면 환자가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경우 법정 대리인에게 설명하고 서면으로 동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의사는 미성년 환자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면서도 “정신적·신체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미성년자에게는 의사가 직접 설명하고 선택하게 하는 것보다는 친권자나 법정대리인을 통해 설명을 전달하고 수용하게 하는 것이 미성년자 복리를 위해 더 바람직하다”고 했다. 미성년 환자는 친권자나 법정대리인과 함께 병원에 와 각종 의료 행위를 선택하고 승낙하는 상황이 많은 점을 고려했다.

다만 대법원은 “친권자나 법정 대리인에게 한 설명이 미성년자에게 전달되지 않아 미성년자 의사가 배제될 것이 명백하거나, 미성년 환자가 적극적으로 거부 의사를 보이는 경우 등에는 직접 설명을 할 의무가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럴 때는 “환자의 나이와 이해도에 맞춰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라고도 덧붙였다.

대법원은 “A양이 보호자로부터 의료진의 설명을 전해 듣고 시술을 수용했을 것”이라며 “의료진이 A양에게 직접 설명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2심 재판부가 충분히 심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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