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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모집에 100명 몰렸다…"의대 가려면 필수" 고교 이 동아리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서울 강북의 A고등학교 과학실험 동아리는 지난달 신입회원 20명을 뽑았다. 신입생 250여명 중 80명이 넘는 학생이 이 동아리에 지원했다. 면접에서 동아리 지원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의대 진학을 희망하기 때문”이었다.

‘의대 진학 유리’ 화학·생명과학 실험 동아리 쏠림

새 학기 고등학교에선 ‘동아리 전쟁’이 벌어진다. 인기 동아리는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최근엔 화학·생명과학 실험 동아리가 인기다. 동아리 활동이 학생부에 기재돼 의대 진학에 유리하다고 알려져서다.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 실험 동아리는 10명 모집에 서류 심사, 면접까지 거치는데 경쟁률이 10대 1을 넘었다. 1지망 동아리에 떨어지면 “마치 대학 불합격 통보를 받은 것 같다”며 전전긍긍하는 학부모도 많다.

학교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고교는 한 곳당 평균 38개의 정규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다. 고교 동아리는 대부분 3월 중순부터 회원을 모집해 4월 초에는 선발이 마무리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제·금융·공학 동아리에도 학생들이 몰렸다. 상경계열이나 공학계열에 진학하려는 학생들도 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의대 쏠림’ 현상으로 동아리 선택조차 의대 관련 분야로 집중되고 있다. 화학·생명과학 관련 실험 동아리 또는 수학 동아리 등이다.

2019년 11월 28일 당시 유은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 룸에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11월 28일 당시 유은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 룸에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학 동아리 인기 배경에는 달라진 학생부가 있다. 2019년 학생부의 ‘부모 찬스’ 논란이 거세지자 교육부는 부모 배경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비교과 요소의 대입 반영을 대폭 축소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자율동아리, 봉사활동, 수상성적 등은 대입에 반영할 수 없다. 학생부에서 전공·진로 관련 활동을 내세울 만한 비교과 영역이 정규 동아리밖에 남지 않는 셈이다.

이 때문에 학생부에 기재할 수 있는 정규 동아리 활동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의대가 수시로 60%를 선발하는데, 지원 학생들은 대부분 내신 등급이 최상위권으로 비슷하다”며 “최상위권 성적 학생들이 차별화할 부분은 얼마나 진로에 관련 있는 정규 동아리 활동을 했는지 뿐”이라고 했다.

밴드·연극 동아리 ‘찬밥’…중학교도 ‘의학반’ 인기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선배들의 ‘의대 진학 실적’이 좋은 동아리에 지원이 몰리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상위권 대학 입학자를 많이 배출한 동아리는 학생·학부모 사이에서 입학 전부터 입소문이 난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의대, 약대 진학생을 많이 배출한 동아리는 면접을 보는 2학년 선배들이 신입생들의 성적을 체크한 뒤 선발하기도 한다”며 “‘입시 명문’ 동아리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의대 진학용’ 정규동아리를 만들기도 한다. 화학·생명과학 연구 동아리를 조직하면, 학교에서 동아리 담당 교사를 배정하는 식이다. 동아리에 들어간 학생들은 의대 진학에 초점을 맞추고 동아리 활동을 준비한다. 의대 진학 준비 사이트에 보면 “원하던 1지망 동아리에 합격했는데, 의대에 가기 위해선 어떤 실험 실습을 하는 게 유리한가”라는 질문이 많이 올라온다. 실험 동아리에 재학 중인 한 고등학생은 “서로 자기가 돋보이려 하다보니 동아리 안에서 다툼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과거 인기가 있었던 밴드·연극 동아리 등은 찬밥 신세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5~6년 전만 해도 학교에 밴드 동아리가 5개 있었는데 지금은 한 개밖에 남지 않았다”며 “학생들이 의대만 바라보는 데다가, 공연 동아리는 자율 동아리인 경우가 많아 학생부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뿐 아니라 중학교에서도 의대 관련 동아리가 인기다. 의대에 많이 보내는 자율형사립고 진학에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 교사는 “자사고 면접 때 의학, 화학 동아리 활동 경험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상위권 학생들은 동아리 선택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며 “학부모들이 ‘우리 애는 의대를 가야 하니까 신경써서 학생부에 기록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학부모 과열 양상 “우리 애 넣어달라” 민원도

인기 동아리 선발 절차에는 학부모 입김도 거세다. 1순위 동아리에 탈락하면 학교로 찾아와 항의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서울의 한 고교 동아리 담당 교사는 “선발 방식이 공정했는지, 탈락 사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며 학교로 찾아오거나 전화로 따지는 학부모들도 많다”며 “선착순으로 선발하는데 공정하지 않다며 ‘성적순으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부모들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 새천년홀에서 열린 '종로학원 2023대입 수시·정시전략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설명회 자료집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 새천년홀에서 열린 '종로학원 2023대입 수시·정시전략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설명회 자료집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의대 쏠림이 동아리 활동에도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해 학교 현장에선 ‘씁쓸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동아리 담당 교사는 “동아리 활동 자체가 대입을 위한 것으로 국한되다보니 아이들끼리 경쟁도 치열하다”며 “동아리를 통해 적성도 찾고 다른 취미활동도 배우는 게 사치가 돼 버렸다”고 했다.

“동아리에서 ‘어떤’ 활동 했는지가 중요”

입시 전문가들은 동아리 ‘이름’보다 동아리 ‘활동’이 중요하다고 했다. 우연철 진학사 소장은 “과학실험 동아리에 입부했다고 ‘플러스’ 점수를 받는 게 아니라, 그 동아리 안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라며 “1지망 동아리에 탈락했다고 좌절하지 말고, 다른 동아리에서도 전공 희망 분야와의 접점을 잘 찾아 활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유석용 서라벌고 교사는 “고등학교 학생부는 대입 뿐 아니라 나중에 공기업, 교사 취업 때 활용되기도 한다”며 “대입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무조건 자율 동아리, 봉사활동을 하지 않을 게 아니라 본인의 적성에 맞게 다양한 활동을 해 보는 게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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