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미 침공 파나마 전투 희생자수 싸고 입씨름(세계의 사회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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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파나마 가족단체 “4천여명”/미군 당국선 5백16명 주장
지난해 12월 미군의 기습으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파나마는 전투 발생 1년이 다가오면서 희생자 숫자를 놓고 파나마 시민과 미군 당국간에 입씨름이 벌어지고 있다.
시비는 지난 9월말 미 CBS­TV가 「60분」 프로그램을 통해 희생자 수가 4천명에 이른다고 한 희생자 가족단체의 주장을 보도하고 나서부터다.
파나마의 「12·20 희생자 가족협회」의 이사벨 코로 로드리게스 여사는 이 프로그램과의 대담에서 『희생자 숫자가 4천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군 당국과 파나마희생자 보상담당 변호사들이 즉각 반박에 나서 4천명이란 숫자는 터무니 없이 많은 것이라며 해명에 나서고 있다.
파나마 거주 미국인 변호사로 파나마인 희생자 보상소송을 담당한 마이클 피어스씨는 자기가 담당한 사망자 수는 1백60명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다른 희생자가 있더라도 4천명이란 숫자는 근거가 희박한 것 같다고 회의적 견해를 나타냈다.
한편 파나마주둔 미 남부 군사령부는 지난 1월 파나마기습때 파나마 군인 3백14명과 민간인 2백2명 등 모두 5백16명이 희생됐을 뿐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파나마 가톨릭교회 인권단체 소속인 미국의 내과의사 감시단은 희생자 수가 3백명에서 7백명 수준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적은 숫자의 희생자 통계와는 달리 램지 클라크 전 미 법무장관은 파나마전투 당시 적어도 수천명의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전망했었다.
클라크 전 장관은 미군에 의해 체포돼 미 감옥에 구금중인 노리에가 전 파나마 대통령이 군사령부로 사용하던 엘 코리요기지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것을 보아도 희생자 수가 생각보다는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2·20 파나마 희생자 가족협회의 코로여사는 자신이 주장한 숫자 4천명은 ▲유족면담 ▲미군발표 ▲파나마시의 파괴상태 등에 근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여사는 『미군들이 시체를 불태우거나 바다에 던졌으며 또는 여기저기에 매장했다』며 엘 코리요기지에서 인근 파코라강 다리 사이의 대규모 공동묘지 12개소가 이를 증명해준다고 주장했다.
파코라강 다리는 엘 코리요기지에 이르는 간선도로로 노리에가의 군대가 미군과 교전한 주요 전투장소였으며 따라서 이 두 곳을 잇는 지역에서 대규모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그녀는 주장하고 있다.
파나마주둔 미 남부군의 대변인 짐스 왱크 대령은 코로여사의 유족단체는 겨우 공동묘지 2개의 재매장에만 참가했기 때문에 정확한 근거를 댈 수 있는 입장에 있지 못하다고 코로여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파코라강 다리 인근 마을의 파나마인들 가운데 당시 전투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은 『전투가 발생한 뒤 많은 노리에가 군병사들이 도보로 도주하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코로여사의 대규모 희생주장을 약화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여사는 『2차 세계대전때의 유대인 학살자 수를 얘기할 때도 일단은 모두가 추정에서 나왔던 것』이라고 말하고 앞으로도 희생자 확인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실제로 체포된 노리에가는 미 감옥에서 TV와 컴퓨터 단말기·복사기 및 각종 편의시설속에서 호텔생활과 다름없는 구금생활을 하고 있는데 반해 미국과 노리에가간의 싸움으로 애매하게 희생된 죄없는 파나마 시민들은 그 희생자 숫자마저 아직 확실하게 규명되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이영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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