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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가솔린 꽉찬 지하실…모두 조심해야" CIA 출신 칼린

중앙일보

입력

긴급진단-북핵 위협 속 한반도의 길을 묻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 위협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 정세가 위태롭게 돌아가면서 한국의 독자 핵 개발론도 어느 때보다 거세다. 중앙일보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한반도 안보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 위한 기획 시리즈를 미주중앙일보와 함께 연재한다. 핵무기 권위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의 인터뷰를 필두로 미국과 유럽의 정책담당자 및 정보 전문가의 인터뷰 등을 통해 남북 및 북·미 간 대치 상황의 궤적과 방향성, 그리고 가능한 선택지들을 짚어본다. 세 번째 순서는 과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서 선임 정책보좌관으로 일하면서 북ㆍ미 교섭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로버트 칼린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연구소 초빙교수와의 인터뷰다.

[한반도의 길③] 로버트 칼린 교수 인터뷰 

로버트 칼린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연구소 초빙교수가 최근 미주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ㆍ미 관계와 북핵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미주중앙일보

로버트 칼린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연구소 초빙교수가 최근 미주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ㆍ미 관계와 북핵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미주중앙일보

‘가솔린이 잔뜩 차 있어 양측 모두 조심해야 하는 상황.’
로버트 칼린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연구소 초빙교수가 표현한 지금의 한반도 정세는 그처럼 불안하다. 북한의 도발과 한국의 핵무장론이 서로 맞물려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손꼽히는 ‘북한통’인 그는 1971년부터 89년까지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으로 활동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서 선임 정책보좌관으로 북미 교섭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 담당관을 지내며 1992년부터 2000년까지 대북 특별대사의 선임자문관으로 북미 협상 현장에 있었다.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던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을 돈 오버도퍼와 공저했다. 그가 최근 미주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북핵과 한반도 정세에 대한 분석을 내놨다.

윤석열 대통령의 전술핵 발언이 나왔다. 주변국들의 긴장감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높다고 보지는 않지만 매우 잔인한 시기다. 집 지하실에 가솔린 탱크가 있다고 보자. 그냥 잊어버리고 살 수도 있지만 누군가 성냥불 하나를 거기에 빠트린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분명히 가솔린이 지하에 꽉 차 있다. 양측 모두 조심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전술핵을 추진하면 어떻게 되나.
“핵확산방지조약(NPT)을 탈퇴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매우 큰 일이다. 외교적으로 제재가 있을 것이며 민간 경제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다. 가장 크게는 한국이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국 관료들도 ‘북한이 핵을 가지면 우리도 가지면 된다’고 말한다. 논리적으로 맞는 듯 보이지만 결국 핵의 결과물은 고통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 새 정부는 비핵화와 북핵 관리 측면에서 어떤 변수인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은 여러 가지로 물꼬를 트는 계기였다. 북한 대표부가 워싱턴에 오는 계기가 됐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에 가서 회담을 했다. 2007년 8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의 만남은 더 많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지만, 다음 정부에서 교류가 이어지지 못했다. 직후에 있었던 뉴욕 필하모닉 공연도 좋은 계기였지만 이전의 모든 약속은 결국 폐기됐다. 이후 김정일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만나자고 제안했지만 현실화되지 못한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김정일이 와병 중이고 지도체제 교체를 추진했던 시기였으므로 평화적인 외부 환경을 원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상황은 분명 한국과 미국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북의 입장에서는 한국과 굳이 관계를 돈독하게 이어갈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로버트 칼린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연구소 초빙교수가 최근 미주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ㆍ미 관계와 북핵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미주중앙일보

로버트 칼린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연구소 초빙교수가 최근 미주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ㆍ미 관계와 북핵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미주중앙일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조치들을 평가한다면.
“북과 대화하기 위해서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현재까지 대답은 없는 상태라고 알고 있다. 두 가지 상황일 수 있다. 먼저 북한에 전하는 제안 내용이 그들에게는 관심 밖이거나, 내용 자체가 잘못됐을 수도 있다. 아니면 북한 입장에서는 김일성이 90년대 가졌던 계획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겠다는 방침을 굳혔을 수도 있다. 미국이 북의 요구에 충족하는 제안을 한다 해도 만족스러운 회담이 이뤄질 것으로 보기 힘들다. 현실이다. 기차는 떠났다.”
앞으로 무엇이 달라질 것으로 보나.
“내가 국무부에서 일하던 2001년에 부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고위 관료들은 검토 자료들을 보기도 전에 정책 방향을 정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한 거다. 바이든 정부는 그렇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2년이 지났으니 효과가 없다면 재검토해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북한 열병식에 대한 인상은.
“이번 행사는 매우 극화한 것이 특징이며 영상으로도 매우 놀랍게 묘사했다. 이런 화려한 행사에 쏟은 열정을 전쟁에 쏟는다면 큰 문제가 될 것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이런 에너지를 민간 경제에 쏟는다면 훨씬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김정은 딸의 등장이 특이했다. 김정은 딸은 에어쇼와 불꽃놀이에서 김정은과 함께 나란히 했고 그 외에는 모두 뒷자리에 있었다. 매우 정교하게 준비된 내용이라고 보여진다.”
딸을 앞에 내보인 의도는 무엇이라고 보나. 차기 지도자 반열인가.
“한국 정부도 그런 의미는 아닌 것으로 본다고 발표했다. 차기 지도자급이라고 한다면 왜 그렇게 일찍 공개 석상에 내보이겠나.”
이제 북한 입장에서는 외교 회담 준비보다는 핵무기 개발을 완료하는 시기가 된 것인가.
“맞다. 열병식에서 보지 않았나. 엄청난 무기들을 언제 쏴댈지 궁금하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김정은이 미사일을 모두 발사한 뒤 다시 핵연료를 채우는 시간이 되어서야 다시 외교 테이블에 나올 수도 있다고 말이다. 2017년에도 그랬다. 당시도 모든 미사일을 쏘고 외교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것 같다.”
2006년 10월 31일 민간인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로버트 칼린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연구소 초빙교수가 방문단원들과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 존 루이스 스탠퍼드대 교수(2018년 작고), 칼린 교수, 잭 프리처드 워싱턴 한국경제연구소 소장. 미주중앙일보

2006년 10월 31일 민간인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로버트 칼린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연구소 초빙교수가 방문단원들과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 존 루이스 스탠퍼드대 교수(2018년 작고), 칼린 교수, 잭 프리처드 워싱턴 한국경제연구소 소장. 미주중앙일보

2019년 하노이 회담 실패를 북핵의 분기점이라고들 한다. 50년 북ㆍ미 관계 지켜본 실무자로서 공감하나.
“싱가포르 회담은  매우 좋은 시작이었다. 영변 시설을 동결하겠다는 김정은의 제안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 것이었기 때문에 너무 빠르게 거절하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 시도와 역제안을 해봤어야 했다. 트럼프가 그렇게 빨리 철수한 것은 전체적으로 좋은 협상 기술이 아니었다.”
한반도에 가장 평화로운 시기가 있었다면 언제로 기억하는가. 역시 제네바 합의 때인가.
“물론이다. 시작할 시기뿐 아니라 합의 기간 내내 평화로웠다. 물론 이런저런 사건들은 있었지만 당시 제네바 합의는 모든 일을 만나서 해결하는 일종의 ‘우산’ 역할을 했다. 이 우산(제네바 합의)은 오히려 나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줬다. 하지만 이런 시기는 2001년 이후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북한은 KEDO 시기에도 핵무기 개발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제네바 합의 기간에도 핵무기를 만들고 있었다는 뜻 아닌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김일성은 외교적으로 미국과의 평상적인 관계를 원했고 이런 관계는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자신들을 보존하는 일종의 보호막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북한은 스스로 약소하고 왜소한 국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약하게만 보이고 싶지 않았다. 2004년 이후에 지속적으로 전문가를 북한에 초대한 것은 위협이 아니라 대화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우리는 강해지고 있는데 그래도 대화를 하지 않을 거냐’는 대미 메시지였다. 하지만 대화는 열리지 않았다. 상황은 하노이 이후에 완전히 달라졌다. 그런 형태의 대화와 접촉에 북한은 더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중국이라는 강한 동맹이 생긴 상황이다.”
보수 진영은 대북 강경 방침을 주장한다.
“(트럼프 정부의)폼페이오 전 국무부 장관은 자신의 책에서 재임 당시 하고자 했던 것들에 대해서 언급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북한은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이 하면 다른 나라들은 그냥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이제 그렇지 않다.”
워싱턴이 영변이나 다른 시설에 군사공격을 고려한 적은 없었나.
“1994년 6월에 상황이 악화되면서 워싱턴이 영변 공격을 고려했었다. 하지만 당시 북한이 모든 것을 정리하고 대화에 나섰다는 점을 미국은 이해하지 못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일이 더욱 악화됐을 것이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 시기도 위기였다. 하지만 많은 미국인들의 우려와는 달리 북한은 무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워싱턴이 무력을 동원하지 않으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고위 공직자 중엔 아무 생각이 없거나 상식만으로 판단하는 이가 적잖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미디어의 주장에 휘둘리는 이들도 있다. 한국의 외교부 장관도 ‘북핵이 있는 한 평화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정말로 평화는 없는 셈이다. 하지만 북핵은 현실로 봐야 한다. 무력 행사나 공격의 명분에는 선이 있다. 만약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한 ICBM을 태평양 한가운데로 쏘아 올린다면 미국은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 실제 이런 상황은 7번째 핵실험보다 더 엄중한 상황이 될 것이다. 워싱턴은 중국의 풍선을 두고도 이렇게 난리법석 아닌가. 그런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2018년 10월 10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주최한 ‘비핵화 이후 한반도’ 학술회의에 참석한 로버트 칼린(왼쪽 둘째)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연구소 초빙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정인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 칼린 교수, 추수룽 중국 칭화대 국제정치학 교수, 스탠리 로스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연합뉴스

2018년 10월 10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주최한 ‘비핵화 이후 한반도’ 학술회의에 참석한 로버트 칼린(왼쪽 둘째)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연구소 초빙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정인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 칼린 교수, 추수룽 중국 칭화대 국제정치학 교수, 스탠리 로스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연합뉴스

외교 현장을 통틀어 50년 동안 북과 남의 관리들을 만나고 대화했다. 양측 모두 대결을 종식하는 통일에 대한 기대나 열정이 있어 보였나.
“양측 모두 그런 느낌은 주지 않았다. 그들 마음속 깊이 그런 열망이 있을 수는 있지만 단기간 내에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지는 않았다. 북한은 알다시피 통일의 개념을 바꿨다. 이전에는 영토가 하나로 통합되는 통일이었다면 80년대 이후에는 남쪽을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남쪽은 북을 늘 ‘북한’이라고만 불렀다. 요즘 그런 표현이 더 많이 나온다. 아마도 악화된 관계 탓이 아닌가 싶다.”
아직 북의 지인들 또는 관료나 학자들과 연락하고 정보도 주고 받나.
“북한은 이미 불을 끄고 커튼을 내린 상태다. 어떤 미국인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대화하거나 만나려는 의지는 전혀 없다고 말한다. 노동신문은 외국 소식을 대폭 줄였으며, 정부 기관도 외교적으로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무슨 생각과 입장인지 모르면 예측이 어렵고 대화는 불가능해진다. 만약에 내부 상황이 달라져 대표단을 내보내거나 문을 열면 그때 뭔가 좀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 곧 뭔가 북에서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인가.
“소문은 그렇다. 북이 핵실험 끝에 서너 달 후 대표단을 내보내 외교채널을 가동할 것이라고. 그런 소문은 작년에도 있었다. 기다려 봐야 한다.”
미국에선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팀이 모두 은퇴해 인력 측면에서도 난관이 있는 것인가.
“사실 그렇다. 북한에선 당시 합의 테이블에 있었던 인물들이 모두 승진해서 고위층이 됐다. 그때 경험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선 오히려 모두 은퇴하거나 현장을 대부분 떠났다. 물론 새로운 신진들이 잘 배워가면 되겠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 실제로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내 임기 내 한반도에 어떤 문제도 발생하면 안 된다’고 말해야 하는데, 2001년 이후 그런 대통령이 없다. 그래서 문제다.”
제네바 합의와 같은 합의는 이제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인가.
“1974년의 50년 전이면 1924년이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보라.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1945년에 만든 협정을 바꾸지 못하고 지키고 있다. 왜 아직까지 그때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지내야 하는가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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