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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억] 엄마 품이 더 좋은 초등학교 신입생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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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호 31면

‘강제등교’, 서울 상도동, 1974년. ⓒ김녕만

‘강제등교’, 서울 상도동, 1974년. ⓒ김녕만

새로 산 옷과 신발, 책가방과 신발주머니, 초등학교 입학생의 구색을 갖추었지만 정작 어린 학생은 엄마 품을 떠나 학교에 가기 싫다며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다. 말로 어르고 달래다 실패한 엄마는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이다. 한 손에 신발주머니를 들고 한 손으로는 아들의 손목을 꽉 잡아끈다.

“너도 학교 가기 싫구나! 실은 나도 그렇다.”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야 각자 다르겠지만 당시 사진학과 학생이던 나도 새 학기가 시작할 무렵이면 항상 가위에 눌린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서울에서 거처할 곳과 등록금 장만, 그리고 값비싼 사진재료 구입 등 고학생이 해결해야 할 숙제가 너무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김없이 3월은 오고야 말아 나도 무거운 발걸음으로 학교를 향하던 길이었다.

소위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행여 지각이라도 할새라 애가 타서 마음이 급한 엄마와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는 엄마가 야속한 아들, 두 사람의 갈등 사이에서 ‘나 몰라라’ 무심한 동생. 엄마의 발걸음은 바쁘게 앞을 향하지만 반대로 아들의 뒷걸음질 치려는 상반된 심리가 맞물리면서 긴장 속에서 웃음을 자아냈다. 이날 골목길에서 벌어진 순간 포착은 당시 권위 있는 큰 상을 내게 안겨주었고, 사진가로 나아가는 데뷔작이 되었다. 학교 가기 싫다고 떼쓰던 아이가 학교 가는 발걸음이 무겁던 내게 희망을 쏘아 올려준 셈이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엄마 품에서 어리광을 부리며 동생과 티격태격 철없이 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낯선 학교에 간다는 것이 일곱 살 아이에겐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3월이 되어 병아리처럼 귀여운 초등학교 신입생을 보면 50대 중반에 접어들었을 이 사진 속 아이가 생각난다. 어쩐지 오늘은 학교에 가기 싫고, 어쩐지 오늘 하루는 회사에 가기 싫고, 어쩐지 오늘은… 살면서 마음이 움츠러드는 그런 날이면 손목을 꽉 잡아 이끌어주던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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