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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오염 위험수위(22)|국내 외국기업 공해수입 반이 유해업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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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공해수입」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심각하다. 선진공업국들의 공해산업을 무분별하게 국내로 끌어들여 우리의 환경이 크게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 진출해 있는 다국적기업을 비롯한 외국인투자기업은 모두 2천여 업체로 투자규모만도 77억4천9백만 달러(약5조6천억 원)에 이르고 있다.
이중 약 50%가 중화학·기계-금속·화공 등 이른바 공해다발업종들이다.

<방지시설 안 갖춰>
또 이들 외국공해기업 대부분이 오염방지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거나, 갖추고도 가동하지 않아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실제로 ESCAP(아시아-태평양지역 경제사회 이사회)가 최근 울산·온산공단에 입주해있는 외국인 투자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환경관리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기업이 국내기업보다 훨씬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결과 이 지역 외국인 투자기업 31개 업체 가운데 27개 업체가 석유화학·금속 등 환경처가 분류한 공해다발업종이었고 오염물질배출은 분진의 경우 공단 전체배출량의 55%, 유해폐기물의 경우 8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기중의 중금속배출량도 외국인 투자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공단에서 취급하는 위험물질 취급비율도 외국인투자기업이 전체 취급량 가운데 황산 90%, 염산 1백%, 암모니아 98%, 불소 50%등 절대적이어서 폭발사고의 위험성도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이들 업체 중에서는 자국에서 공해산업으로 낙인찍혀 엄격한 규제와 주민들의 공장철거 요구에 밀려 한국기업과 합작투자형식으로 진출, 수출명목으로 완제품만 되 가져가는 경우도 있어 한국이 선진국의 「공해피난처」가 돼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 조사에 한국 측 대표로 참여했던 김정욱 서울대교수는 『선진국의 공해산업이 중·후진국에 진출할 때 그 나라의 환경기준이 자기 나라보다 취약한 점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고 『선진국의 공해산업 유치는 합법적인 공해수입』이라고 비판했다.
국내에 들어와 공해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대부분의 외국인 투자기업은 한국이 경제발전 초기단계인 60, 70년대에 진출한 업체로 당시 자본 및 기술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각종 혜택까지 줘가며 외국자본을 끌어들었다.
그로 인해 오늘의 경제발전을 이루는데 한몫을 한 것도 부인하기 힘들지만 환경론자들은 『한국의 경제성장은 공해와 맞바꾼 것』이라며 그 대가는 너무 큰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공업발전의 상징으로 손꼽히는 울산·온산공단은 그러나 4만 명에 이르는 주민이 수 십 년 동안 주변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로 각종 공해 법에 시달리다 끝내 공해에 내쫓겨 집단 이주하는, 규모에 있어 세계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처참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환경전문가들은 한국의 대표적 공해수입 사례로 울산무기화학을 들고 있다.

<일서도 악명 높아>
울산무기화학 (현재 ㈜보광)은 일본의 일본화학과 74년 합작투자로 설립됐다.
일본화학은 6가크롬 생산업체로 일본 내에서도 공해기업으로 악명이 높았던 기업이다.
6가크롬에 중독되면 콧구멍 벽에 구멍이 뚫리는 비중격천공 뿐 아니라 폐암·신경장애· 빈혈·위궤양·관절염 등을 앓게되고 심한 경우 턱뼈가 썩고 이가 빠지는 증세가 나타나는 무서운 중금속이다.
또 6가크롬에 오염된 땅에 사는 식물이 자라지 못하며 폐기물 중 처리가 가장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화학은 한국에 진출하기 전 2백 여명의 종업원 중 6명이 폐암으로 사망하고, 1백61명이 비중격천공등의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크롬찌꺼기를 동경한복판에 묻었다가 지하철공사로 들통났는가 하면 크롬광폐기물을 실은 배가 도쿠야마호에서 침몰, 근처 어장의 어패류를 모두 폐사 시키기도 했다.
이 같은 공해기업을 한국으로 수출한다는 발표가 있자 일본 내에서는 공해수출 반대시위가 45회나 일어나는 등 사회적으로 크게 문체가 되면서 국회로까지 비화됐었다.
우여곡절 끝에 76년 울산무기화학이 가동을 시작했으나 가동하자마자 인근 공장들과 함께 각종 유독 물질을 배출, 주변 삼산 평야를 농사조차 지을 수 없는 황무지로 만들어버렸다.

<폐허된 삼산 평야>
기름진 농토로 유명했던 울산 삼산 평야는 카드뮴·수은등 중금속과 아황산가스등 유독가스에 오염돼 버려진 땅이 돼버린 것이다.
85년 국내 최초로 울산공단에서 6가크롬 중독증세인 비중격천공 환자가 발생, 큰 충격을 던져주었으나 어느 회사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중금속제련 및 가공공장이주로 입주해 있는 온산공단도일본의 공해산업이 많이 들어와 있다.
온산공단은 85년 공단주민 5백명이 집단으로 「이타이이타이」증세를 보여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공단이 됐다.
카드뮴 중독증인 이타이이타이병은 50년대 일본의 다국적기업 미쓰이 재벌이 처음으로 발생시킨 공해병으로 처음에는 단순한 두통과 신경통 증세를 보이다 병이 깊어지면 몸을 조금만 부딪쳐도 뼈가·으스러진다.
일본의학계의 추적조사로 미쓰이 광업이 납과 아연을 채광, 제련하는 과정에서 유출된 카드뮴·비소 등의 중금속에 오염된 농작물과 어패류·식수를 먹은 주민 4백 여명이 중독, 발병한 사실을 밝혀냈다.
일본에서는 2백58명의 카드뮴 중독환자가 발생, 이중 l백28명이 숨졌다.
바로 그 미쓰이 재벌의 계열사인 동방 아연이 한국의 고려아연과 합작, 78년 온산공단에 들어왔다. 일본에서 더 이상 발을 못 붙이게 되자 한국으로 공해공장을 가지고 온 것이다.
고려아연은 납·아연제련공장으로 가동을 시작하자마자 주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숨조차 쉬기 곤란할 정도의 유독가스를 쉴새없이 내뿜어 인근 주민들은 기관지 계통의 질병과 전신의 뼈마디가 쑤셔 걷기조차 힘들다며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공단주변 나무는 물론 농작물도 말라죽어 갔으며 중금속이 함유된 유독 폐수를 배출해 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어장마저 망쳐놓았다.
울산·온산공단에 이어 국내 제2의 중화학공업단지인 전남 여천공단도 다국적기업을 비롯한 외국인투자기업이 배출하는 각종 오염물질로 중병에 걸려있다.
미국의 거대 비료회사인 다국적기업 아그리코사와 77년 합작 설립한 남해화학의 경우도 1년 내내 내뿜는 악취와 유황분진으로 인근 주민들이 눈병·기관지염·피부병을 앓는 등 피해를 보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인근 야산에는 소나무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바위에는 이끼조차 끼지 않는 등 생태계까지 파괴되고있다.
이 때문에 공장주변 낙포리주민 1천2백 명이 공해에 견디다 못해 고향을 떠났다.
이밖에도 마산수출자유지역에 밀집해있는 일본·미국 등 외국기업들이 오염방지시설도 갖추지 않은 채 유독 폐수를 마구 쏟아내 마산호은 죽은 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이처럼 선진 외국공해기업들은 자국에서는 공해산업으로 낙인찍힌 사양산업을 제3국으로 이전, 그들이 공업화과정에서 겪었던 공해피해를 그대로 재현시키거나 오히려 더 나쁜 상황을 빚게 하고있다.
이들 외국기업들은 자국의 공해산업을 제3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때로는 정치적인 압력까지 넣는 등 온갖 수단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산화티타늄공장을 한국에 세우기 위해 4년동안 「공해다」 「아니다」로 시비를 벌여오다 미 통상 대표부까지 동원, 결국 국내진출 허가를 받아낸 미국의 다국적기업 뒤퐁이 그 좋은 예다.
세계적 화학제조업체로 가는 곳마다 공해시비를 일으키고 있는 뒤퐁이 연간 6만t 규모의 이산화티타늄공장을 짓기로 하고 재무부에 사업인가를 신청한 것은 86년2윌.
그러나 환경처의 유해판정으로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후 네 차례에 걸쳐 한미통상 현안으로까지 내세우며 끈질기게 상륙을 시도, 결국 지난해말 사업허가를 얻어냈다.
그러나 공장건설지로 온산공단이 유력한 곳으로 알려지자 온산주민들은 「또 하나의 공해공장」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세게 반발하고있다.

<끝내 허가 내줘>
페인트·종이·플래스틱 등에 백색광택을 내는 착색용 안료로 쓰이는 이산화티타늄은 제조방법으로 황산법과 염산법이 있다.
황산법은 제조과정에서 산성폐수·산성폐기물이 생겨 공해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뒤퐁측은 자사가 채택하고 있는 염소법은 황산대신 염소를 반응시키는 것으로 공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제조과정에서 염소가스가 누출될 경우 폭발사고 등 엄청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가뜩이나 폐기물 매립지가 모자라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판에 연간 4만t이나 나오는 유해폐기물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는 우려도 있다.
외국기업의 한 간부는 『국내에 진출하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은 고도의 기술 집약적인 산업이 많아 제조과정에서 어떤 유독 폐기물이 배출되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게 사실』이라 말하고 『외국의 공해산업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사전에 정보를 수집, 연구·검토한 뒤 객관적인 공해근거를 제시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환경론자들은 『개방의 물결을 타고 선진국의 공해산업 국내진출이 크게 늘어날 것에 대비해 환경보전법과 외자도입법 등 관계법령을 보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국내기업들의 외국자본 및 기술도입 자세도 고쳐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생산기술 도입에만 열을 올리지 말고 오염방지기술 도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충고했다. <글 정재창 기자 사진 최정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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