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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뒤흔드는 극우 바람] 안보·경제 불안에 ‘1등 복지’ 스웨덴마저 우파 포퓰리즘…21세기판 파시즘 출현 우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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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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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1일 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 광장에서 열린 총선 유세에서 극우 정당인 ‘이탈리아 형제들’ 지지자들이 조르자 멜로니 대표의 연설에 환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9월 11일 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 광장에서 열린 총선 유세에서 극우 정당인 ‘이탈리아 형제들’ 지지자들이 조르자 멜로니 대표의 연설에 환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민주주의의 아성이라는 유럽의 유권자들이 최근 잇따라 극우로 선회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주류 국가에서도 극우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부쩍 늘었고 대표적인 복지국가로 꼽히는 스웨덴에서도 극우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극우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고 있다는 평가 속에 유럽 각국의 극우 정당 득표율도 전례 없이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유가 상승 등 고물가에 따른 경제난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속에 보호무역주의가 판치고 인종차별과 이민자·이주민에 대한 억압이 줄을 이으면서 파시즘과 나치즘이라는 정치적인 독버섯이 자란 것과 비슷한 상황이 재현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만만찮다. 여기에 갈수록 늘어나는 난민에 대한 피로감과 이민자 급증에 따른 실업난,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안보 불안에 중도좌파 정책에 대한 실망감 등이 겹치면서 극우적 성향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럽 각국에서 극우 성향 정당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유럽연합(EU) 차원의 국제 공조 체제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특히 극우 정당들이 국제적 연대보다 자국 중심주의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 위기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주요 현안에 대한 공동 대응 전선에 미묘한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극우 세력의 배타적·폐쇄적 주장에 대한 유권자들의 호응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EU라는 정치·경제 공동체가 또다시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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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니 “이주민 막기 위해 해상 봉쇄”

올해 유럽을 가장 놀라게 한 정치적 사건 중 하나는 이탈리아 극우 정권의 출범이었다. ‘이탈리아 형제들(FdI)’을 이끄는 조르자 멜로니는 지난 9월 총선에서 승리하며 총리에 올랐다. CNN 방송은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 이래 가장 극우 정권”이라고 전했다. 45세의 엄마 정치인인 그는 얼핏 보면 일반적인 극우 정치인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군복을 입거나 파시즘을 전면에 내걸지도 않는다. 오히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비난하고 EU를 옹호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정책은 일관되게 파시즘으로 향하고 있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반이민 기조는 기본이고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로 건너오는 이주민을 막기 위해 해상을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 국경에 반이민 장벽을 쌓은 것과 흡사하다. 마테오 살비니의 ‘동맹’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전진이탈리아’ 등 연정을 함께하는 정당과 정치인들이 극우 성향이란 점도 우려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두 당 모두 10% 미만의 저조한 득표율에 의석도 이전 총선에 비해 크게 줄었지만 멜로니와 연정을 구성한 덕에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게 됐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정당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또 다른 숨겨진 진실이 드러난다. 이탈리아 형제들은 2012년 베를루스코니의 ‘자유의 민중(PdL)’에서 극우 세력이 분리해 나와 만든 정당으로 2009년 PdL과 통합한 뉴파시즘 정당인 국민연합(AN)의 정치적 주장을 승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AN이 무솔리니의 국가파시스트당(1921~43년)과 공화국 파시스트 정당(1943~45년)의 당원들이 전후 결성한 네오파시스트 정당인 이탈리아 사회주의 운동(MSI)의 맥을 잇고 있다는 점이다.

멜로니 총리는 FdI는 주류 보수 정당일 뿐이라고 강변하며 극우 성향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언제든 이민·국경 문제 등에서 ‘본색’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는 게 현지의 평가다. 일각에선 우크라이나 지원과 러시아 압박에 대한 유럽 차원의 공동 대응에서 이탈리아가 조만간 빠지는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국민연합 르펜, 마크롱 상대 41.5% 득표

프랑스에서도 지난 4월 대선 때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후보가 결선투표에 올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상대로 41.5%를 득표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프랑스에서 극우 정당이 대선 결선투표에 오른 것은 이미 세 번째다. 문제는 득표율이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르펜의 아버지인 장 마리 르펜이 2002년 자크 시라크와의 결선투표에서 17.8%를 득표한 데 이어 2017년 대선 때는 딸 르펜이 마크롱과 맞붙어 33.9%를 얻었다. 더 나아가 올해는 극우 정당에 표를 던진 프랑스 유권자가 40%를 훌쩍 넘어섰다. 이제 극우는 프랑스에서 정치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RN은 반유대주의·배외주의·인종주의 등을 공공연하게 내세우며 네오파시즘 정당의 하나로 평가받아왔다. 프랑스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앞세우며 포퓰리즘·반공주의·반이슬람주의·반이민주의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보호무역주의·반글로벌리즘·경제내셔널리즘을 고수한다. 지난 6월 총선에선 89석을 얻어 의석을 10배 이상 늘리며 원내 제3당으로 급부상했다.

RN의 발달 과정을 보면 유럽에서 극우파가 어떻게 세력을 모으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 결성 당시엔 무명의 약소 정당에 지나지 않았지만 1980년대 이후 프랑스 경제가 악화하고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노동자층을 중심으로 지지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이민자와 이주자·유대인 등에게 경제난의 원인을 돌리면서다.

하지만 RN의 극단적인 주장은 프랑스 사회에서 기피 대상이 됐으며 주요 정당들도 함께하길 꺼리면서 고립 상태에 빠졌다. 결선투표를 실시하는 프랑스 선거에서 매번 다른 정당들이 단합해 극우 정당을 배제하다 보니 의회 진출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경제난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불안감이 더해지면서 갈수록 지지층을 넓혀가는 모습이다. 르펜도 외국인 혐오와 배제·차별 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가정을 꾸려가는 평범한 어머니로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국민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극우’ 전략으로 프랑스 정치권 공략에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스웨덴 우파 연합 8년 만에 정권 교체

유럽의 극우 돌풍은 대표적인 복지국가인 스웨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극우 정당인 스웨덴민주당(SD)은 지난 9월 총선에서 73석을 얻으며 원내 2당으로 올라섰다. 득표율도 20.5%를 기록했다. 스웨덴 유권자 다섯 명 중 한 명이 극우 정당에 표를 던진 것이다.

1988년 창당한 SD는 스웨덴 민족주의를 내걸고 국민 보수주의와 우익 포퓰리즘, 반이민, 유럽 회의주의 등을 외쳐 왔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 성향이 강한 북유럽 국가에서 세를 넓히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총선은 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과 에너지·경제·범죄·이민 문제 등이 핵심 이슈로 떠오르면서 스웨덴 유권자들도 극우 정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SD의 약진은 스웨덴 정치 지형도 바꿨다. 우파 연합이 8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서다. 비록 SD는 이번 연정에선 빠졌지만 우파 4개 정당 중 최다 의석을 보유하고 있어 향후 스웨덴의 주요 정책 결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럽 각국도 북유럽 복지국가의 극우 바람은 파급력이 훨씬 더 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웨덴의 정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동 유일의 서구식 민주주의 국가인 이스라엘에서도 극우 정당이 전면에 나섰다. 지난달 총선에서 승리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21일 우파 연합의 새 연정 구성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연정엔 이타마르 벤그비르가 이끄는 극우 정당 연합인 ‘독실한 시오니즘당’도 포함됐으며 벤그비르 자신도 국가안보장관을 맡았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 등 현지 언론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경파 내각”이라고 전했고 영국 가디언은 “지금까지 등장한 이스라엘 정권 중 가장 우익 정권”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이스라엘 정권의 극우화로 인해 중동 평화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 거대한 장애물이 세워지게 됐다는 점이다. 특히 독실한 시오니즘당은 극우는 물론 유대인 우월주의를 강하게 표방하고 있다. 극단적 시온주의 사상인 카하니즘을 신봉하며 반아랍 성향을 기조로 비유대인에게는 선거권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정치를 통해 종교적 이념을 현실화하려는 이스라엘 극우 정당의 약진을 국제사회가 불안한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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