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럽 뒤흔드는 극우 바람] 인종·성차별 과격·혐오 발언, 유튜브·SNS 등 통해 무차별 확산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19호 12면

SPECIAL REPORT 

서구의 정치 지형에서 최근 극우적 성향이 급속히 확산되는 데는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정치인뿐 아니라 강성 극우파 지지자들이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과격·혐오 발언을 급속히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 정치권에서도 “인터넷이 극우 포퓰리즘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7일 이스라엘 극우 정당 연합인 ‘독실한 시오니즘당’을 이끄는 이타마르 벤그비르는 경찰의 과잉 진압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SNS에 공유해 논란에 휩싸였다. 23초 분량의 이 영상은 이스라엘 도심 한복판에서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추정되는 시민을 이스라엘 경찰이 동시 다발적으로 진압하는 장면이 담겼다. 벤그비르는 이 영상에 “선한 행동이 자랑스럽다”는 글도 남겼다.

벤그비르는 지난 3일엔 팔레스타인 남성을 총으로 사살한 이스라엘 군인 영상을 공유하며 “영웅”이라고 칭송했다가 거센 비난 여론에 직면하기도 했다. 국제인권재단 등 인권 단체들은 벤그비르의 언행에 우려를 나타낸 뒤 “인권 침해를 자행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필요하다”는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관련기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8월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에게 성폭행 당하는 여성을 촬영한 영상을 SNS에 공유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반이민 정서를 자극해 지지자들의 결집을 유도하려 한다”는 비판이 커지자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결국 멜로니의 게시물을 강제로 삭제했다. 가디언은 “지난 50~60년간 좌우가 함께 발전시킨 자유주의 가치와 소수자 권리가 소셜 미디어로 인해 크게 훼손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 큰 문제는 SNS와 유튜브 등이 극우 성향 정치인들의 정치 선동에 활용되는 수준을 넘어 일부 강성 지지자들의 혐오 범죄와 근거 없는 음모론에도 무분별하게 동원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미국 버펄로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백인우월주의를 칭송하는 18세 남성 페이튼 젠드런이 흑인 밀집 지역에서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하는 장면이 인터넷 방송 플랫폼인 트위치를 통해 실시간 생중계돼 큰 충격을 줬다. 사건 직후 트위치 본사는 “생중계 종료 2분 만에 해당 영상물을 삭제했으며 방송 시청자는 22명에 불과했다”고 밝혔지만 삭제된 영상은 이미 극우 성향 사이트들을 통해 빠르게 퍼진 뒤였고 일부 복제 영상물은 조회수가 300만 건을 넘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면서 SNS 운영 업체들이 혐오성 표현과 영상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선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는 “2020년 미 대선 과정에서 허위 정보를 적극 유포한 77개 계정 대부분이 트위터 등 주요 플랫폼에서 여전히 활성화돼 있다”며 “플랫폼 업체들이 콘텐트 원본은 물론 복제물에 대해서도 적절한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서 사실상 혐오 범죄를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비판이 계속되자 유튜브는 최근 영국의 대표적인 인종차별주의 채널로 꼽히는 ‘톨라비전’을 강제 폐쇄하고 10만여 개의 영상도 영구 삭제했다. 유튜브 측은 “폭력과 증오를 조장하는 콘텐트는 엄격하게 금지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트위터는 지난해 1월 미 의회 점거 사태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트위터 글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한 뒤 그의 계정을 강제 폐쇄하기도 했다.

반면 일각에선 이런 제재 움직임에 대해 “인간의 기본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독일 의회가 혐오 발언이 담긴 콘텐트를 24시간 내 삭제하지 않은 인터넷 기업에 최대 5000만 유로(약 650억원)의 벌금을 부과하려 하자 독일기자협회 등이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비판한 게 대표적 사례다. 유해 정보 판단을 법원이 아닌 기업에 맡기는 게 과연 올바른 방안이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는 미 의회 청문회를 앞두고 “페이스북 등 플랫폼들이 표현의 자유라는 면책특권을 유지하는 대신 혐오 콘텐트를 신속히 제거할 수 있는 자체 시스템 구축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며 절충안을 제시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