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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셧다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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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현숙 기자 중앙일보 기자
조현숙 경제부 차장

조현숙 경제부 차장

2013년 10월 1일 미국 연방정부가 멈춰섰다. 예산안 처리 기한인 전날 자정까지 미 의회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다. ‘오바마 케어(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한 건강보험 개혁)’를 둘러싼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립이 불러온 재정 참사였다.

17년 만의 ‘셧다운(shutdown·정부 폐쇄)’에 80만 명 연방 공무원이 강제 무급휴가에 들어갔다. 국방·치안 등을 뺀 대부분 정부 업무가 중단됐다. 부채 한도 증액 논의마저 중단되면서 국가부도(디폴트) 가능성까지 불거졌다. 결국 디폴트 선언 직전인 10월 17일 민주당과 공화당은 잠정 예산안에 합의했다. 셧다운 기간은 17일에 불과했지만 피해는 컸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경제 피해 규모를 240억 달러(약 30조원)로 추산했다. 그해 미국 4분기 경제성장률을 0.6%포인트 주저앉히는 충격이었다.

한국판 셧다운은 준예산이다. 얌전한 명칭과 달리 파괴력은 셧다운 못지않다. 준예산 체제가 되면 정부 재량지출 대부분이 묶이게 된다. 공무원 월급이 나간다는 것 말고는 미국 셧다운과 별 차이가 없다. 더 큰 문제는 준예산에 필요한 경비를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이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조항 자체가 없다. 국채 발행, 차입 모두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의원내각제였던 1960년 내각 총사퇴, 의회 해산에 대비해 만든 제도라 대통령제에 맞지 않는다. 시행한 적도 없어 제도적 구멍이 커도 너무 크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준예산 가능성을 두고 “경제위기를 초래할 단초”라고 경고한 이유다.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여야가 여전히 힘겨루기 중이다. 과반 의석을 무기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감액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겠다 선언했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정부는 강력하게 반대하는 중이다. 올해를 넘기면 바로 준예산이다. 예산 집행의 책임을 진 정부와 집권 여당을 굴복시키겠다는 야당의 오만, 절반도 안 되는 115석을 가지고 예산안을 그대로 밀어붙이겠다는 여당의 오기, 모두 문제다.

미국 정가에서 셧다운은 국가부도를 상징하는 공포의 단어다. 한국의 준예산도 마찬가지다. 경험한 적 없다고 해서 그 위험을 가볍게 봐선 안 된다. 경제가 벼랑 끝에 있는 지금은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