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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장으로 읽는 책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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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성당

대성당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에 있으니.” (…) 그는 빵집 주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꽃장수가 아니라 좋았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만드는 게 더 좋았다. 언제라도 빵냄새는 꽃냄새보다 더 좋았다. “이 냄새를 맡아보시오.” 검은 빵 덩어리를 잘라내면서 빵집 주인이 말했다. “퍽퍽한 빵이지만, 맛깔 난다오.” 그들은 빵냄새를 맡았고. 그는 맛보라고 권했다. 당밀과 거칠게 빻은 곡식 맛이 났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 있는데, 그 빛이 마치 햇빛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음식이 주는 위안을 이처럼 간결하고도 숭고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미국 단편소설의 거장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중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마지막 문장이다. 차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부는,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찾아가라고 전화를 해대는 빵집을 찾아가 주인에게 분노를 퍼붓다가, 그가 차려낸 빵을 한껏 먹는다. 부부가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영성체 의식을 떠올리게도 한다.

‘별것 아닌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표제작 ‘대성당’과 함께 가장 희망적인 결론을 맺은 소설이다. 카버 역시 “이 두 단편이 살아남는다면 제가 정말 행복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