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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중앙시조대상] 수의사로 살다 절제의 미학에 빠져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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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가을이면 시작된 열병은 겨울 초입이 되면 더 깊어졌습니다. 남들은 즐거운 연말에 저는 더 추워진 손을 비벼야 했고, 봄이 되면 뿌리까지 언 상심의 시간을 깨워 마음을 다잡곤 했습니다. 송아지 출장 진료 가는 길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머리가 하얘져 방향을 잃고 출장지를 그만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시조의 정형 미학, 그 절제와 압축 속에 모든 삶의 진실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습작했지만, 응모 마감이 오면 모든 게 허점투성이인 것만 같아서 좌절한 시간이었습니다. 꿈속에서조차 퇴고하고 또 퇴고했습니다. 이제 며칠쯤은 쉬어도 될 것 같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삶의 변곡점이 있을 것입니다. 수의사로 살아오다, 문외한이던 제가 시조 창작 대학원에 간다고 할 때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던 아내 양현숙씨와 절대적 지지를 해준 가족들, 시조의 길로 끌어주신 최한선 교수님, 시조의 뼈대를 세워주신 경기대 한류 문화대학원 이지엽·권성훈·곽효환 교수님, 넘어져 주저앉을 때마다 뒷덜미 잡고 일으켜준 시조 창작학과 동문님들, 포기하고 싶을 때 고지가 저기라고 힘을 주신 김수형 시인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 시대 현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독자와 호흡하는 시조를 쓰기 위해 늘 고민하겠습니다. 부족한 작품에 날개를 달아주신 네 분 심사위원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마리오네트

-김현장 

실 하나 당겨보면 등 돌리는 사람 있다
마스크로 가려봐도 휑한 눈빛 흔들리고
비대면 차가운 거리 회전문은 돌아간다

백동백 무릎 꿇고 저 홀로 피어나
꽁꽁 언 유리창 너머 하얗게 뜬 얼음 얼굴
툰드라 이끼 파먹는 순록처럼 불안하다

관절마다 매달린 끈 조여오는 겨울 아침
숨죽인 채 늪 속으로 도시는 빠져들고
사람이 사라진 길에 빈 줄만 흔들린다

◆김현장

김현장

김현장

전남 강진 출생. 강진 백제동물병원장. 중앙시조백일장 2019년 11월, 20년 7월, 21년 10월 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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