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약 처방 … 진료도 찔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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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경남도에 있는 A정신병원, 한 해 3000여 명이 이용하는 이 병원 환자의 90%가 국가가 의료비를 지원하는 의료급여 환자다. 이 병원의 정신과 전문의는 단 2명이다. 지난해 의사 한 명이 하루 평균 370여 명의 환자를 돌봤다. 정신보건법이 규정한 정신과 전문의의 하루 진료환자 한도(60명)를 여섯 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이 병원 의료급여 환자의 평균 입원일수는 521일. 같은 병원에 입원한 건강보험 환자의 입원일수(41일)보다 13배 정도 길다.

의료급여 환자들에게 처방되는 약은 대부분 1960~70년대 개발된 싸구려 약들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상당수 정신병원이 의료급여 환자들에게는 효과가 떨어지는 저가 약을 처방해 입원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 의료급여 환자 입원기간 길어=대한정신병원협의회가 최근 17개 정신병원을 조사한 결과, 정신질환 의료급여환자의 입원기간은 평균 378일로 건강보험 환자(81일)보다 입원기간이 4.7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의료급여 입원환자의 약제비는 월 평균 5만6000원으로 건강보험 입원환자(18만9000원)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의료급여 환자에게는 대개 30~40년 전에 개발된 싸구려 약을 처방하기 때문이다. 향정신성 약의 경우 건보 환자에겐 개당 2232~4977원짜리 최신 약을 처방하지만 의료급여 환자에겐 개당 9~37원짜리 옛날 약을 처방하는 식이다.

한 제약회사 마케팅 담당자는 "의료급여 환자들에게 주는 약은 효과가 최신 약에 비해 떨어지고 부작용 우려도 있다"며 "하지만 의료급여 환자를 많이 받는 병원은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가 약을 처방한다"고 말했다.

◆ 정액지급제가 문제=의료급여 환자에게 싸구려 약을 쓰는 이유는 수가를 정액(3만800원)으로 묶어놓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병원들은 이 돈으로 의료급여 환자의 진료비와 약값.입원비.식대 등을 충당해야 한다. 의료급여 수가는 건강보험 수가의 51.7%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좋은 약을 쓰지 못하고, 진료는 최소화할 수밖에 없어 입원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한 정신병원의 전문의 A씨는 "이 수가로는 환자에게 도저히 좋은 진료를 할 수 없다"며 "병원 입장에선 이렇게 낮은 수가로는 입원기간을 늘릴 수밖에 없고, 의료급여 환자들의 가족들도 입원기간이 길어지는 것을 선호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의료급여 정신질환자의 의료비가 갈수록 커진다는 게 문제다. 전체 의료급여 대상자의 4%에 불과한 정신질환자는 전체 의료급여 재원의 17%, 입원진료비의 30%를 쓰고 있다.

황태연 용인정신병원 재활부장은 "의료급여 수가를 확 높일 수 없다곤 해도 미국처럼 의사가 환자의 차도를 감안해 입원환자를 외래로 돌리더라도 같은 정액수가를 보장해 입원기간을 줄일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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