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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추억] 한문·한글 모두 능통 … 서예계 '큰 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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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일중 김충현 선생의 작품 '정읍사'(1960). 한자와 한글의 다양한 서체를 하나의 작품에 융합했다.

한국 서예계의 큰 별이 졌다. 일중(一中) 김충현 선생은 소전 손재형(1981년 작고) 선생과 더불어 한국 서예의 양대 산맥을 이뤄왔다. 손재형 선생이 전서를 중심으로 실험적인 글자체인 '소전체'를 발전시켰다면, 일중은 반듯한 글씨인 해서를 바탕으로 정통을 따르는 글씨체인 '일중체'를 뿌리내렸다.

98년 서예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 회고전을 마련했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이동국 학예사는 "선생님의 한문 서예는 전 서체가 뛰어나고 아름답다. 한문뿐만 아니라 한글 서예에도 능통한 몇 안 되는 분"이라며 "전시장이 북적거릴 정도로 선생님의 서예는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21년 서울에서 태어난 일중은 중동고를 졸업한 뒤 김용진씨에게서 예서를, 윤용구씨에게서 행서를 사사했다.

이후 48년부터 61년까지 경동고 교사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과 학교 서예 교육의 저변 확대에 힘썼다. 당시 이미 한글과 한문 서예 글씨로 이름이 알려져 옛 위인들의 비문을 쓰기 시작했다.

충남 병천의 유관순 열사비 비문과 이 충무공의 여러 비문 등은 정인보 선생이 글을 짓고, 일중이 글씨를 써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또한 삼성그룹의 옛 로고인 한자 '三星'과 설록차로 유명한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의 '설록차' 글씨 등 대중에게 잘 알려진 글씨를 많이 남겼다.

일중은 한문뿐만 아니라 한글 서예 사랑에도 남달랐다. 한글 말살정책으로 한글 붓글씨가 금지됐던 일제시대에 그는 '우리 글씨 쓰는 법'이라는 한글 서예 교본을 준비했다가 해방되자마자 출간하는 열의를 보였다. 55년엔 중.고교생용 서예 교본인 '우리말 중등글씨체'를 집필해 학교 서예의 기본 교재로 애용됐다.

그는 또 많은 후학을 길러내 서예의 맥을 이어왔다. 요즘 유럽에서 주목받는 서예가 정도준씨는 "선생님은 해방 후 궁체.고체를 정립하는 등 선구적인 역할을 하셨다. 선생님에게 글씨를 배운 것은 큰 기회이자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서예가협회 회장을 지내는 등 활발히 활동하던 고인은 90년대 후반 파킨슨병의 발병으로 작업을 접고 투병 생활을 해 왔다. 그의 제자인 신두영씨는 "글씨를 가르치실 땐 엄했지만 평상시엔 참 자상한 분이었다. 병중에 오래 계셔서 많은 제자가 안타까워했다"고 말했다.

후학 양성과 서예 저변 확대의 업적으로 보관문화훈장(87년). 은관문화훈장(2004년)을 받았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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