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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동냥으로 딸 키운 아버지가 찾아 헤맨 그곳은 어딜까[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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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푸른숲

“여기가 원청(文成)입니까?”
희고 거친 광목으로 싼 큰 봇짐을 짊어진 채 '원청'을 찾는 북쪽 남자. 영화 같은 이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남자, 주인공 린샹푸는 눈보라 치는 한겨울에 젖동냥으로 키운 딸에게 '100여집의 젖을 먹여 자랐다'고 해서 린바이자(林百家)라는 이름을 붙인다. 린샹푸와 딸 린바이자까지, 대를 이어 연결되는 개인의 역사를 얼핏 설화처럼, 얼핏 관찰기처럼 담아낸 이 이야기는 중국 작가 위화의 장편 소설 『원청(文城)』이다. 『인생』, 『허삼관 매혈기』 등으로 유명한 이 작가가 『제7일』 이후 8년 만에 펴낸 신작이다. 60대에 접어든 작가가 23년간 수정을 거듭하며 쓴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출간돼 150만 부 이상 판매될 만큼 화제에 올랐다.

중국 작가 위화.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했을 때의 모습이다. [중앙포토]

중국 작가 위화.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했을 때의 모습이다. [중앙포토]

소설의 배경은 중국에서 청나라가 저물고, 중화민국이 시작되는 1900년대 초반. 토비(土匪, 지방에서 일어난 도적 떼)와 민병단이 오가는 어수선한 전쟁통, 달리 말해 역사적 격변기 속 개인의 드라마를 세밀히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와도 얼핏 비슷하다. 위화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시기 그런 난세 속 대한제국에도 '원청' 같은 이야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한국의 이야기에 관심을 표한 것과도 통한다.

토비에 붙잡혀간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여자애보다는 장남인 내가 몸값이 더 높다'고 흥정하는 오빠의 모습이나, 군인들이 들어오자 바짝 긴장하는 마을의 모습 등에선 무력이 지배하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인물들의 사소한 개인사를 담담하게 적었지만, 그 개인사들이 모여 역사가 된다는 점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 구성이다.

『원청』의 부제는  '잃어버린 도시'다. 린샹푸는 사랑하는 사람의 고향 ‘원청(文成)’을 찾아 헤매지만 아무도 그곳을 알지 못한다. 중국 저장성에 동명의 지역이 있지만, 소설이 칭하는 '원청'은 말로만 존재하는 곳이다. 원청을 찾는 남자의 질문으로 시작된 소설은, "원청이 어디 있는데?"라는 질문에 "어딘가에는 있겠지"라고 답하는 여자의 말로 귀결된다. 위화가 한국어판 서문에 적었듯 "세상에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고,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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