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마지막 분쟁」 종식/독­파 국경조약 체결 의미와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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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독일의 대 동구 선린외교 의지/「빈부경계선」 아닌 양국 경제협력 “라인” 강조/명분 없는 연기로 잡음날까 우려 콜 총리 후퇴
독일과 폴란드의 오데르­나이세강선 양국 국경 확정은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분쟁의 종식을 의미한다.
독파 양국 외무장관은 14일 이 오데르­나이세강을 두나라의 「항구불변」의 국경선으로 규정하는 양국 국경조약에 서명했다.
지난해 11월9일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독일 통일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부터 폴란드는 불안했다. 통일 후 막강해질 거대 독일이 현 폴란드 영토의 3분의1에 달하는 옛영토(1937년까지 독일 땅이던 오데르강 이동의 슐레지엔ㆍ포메른 지방 등 약 10만평방㎞)의 반환을 요구해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이 조약체결은 당초 콜 총리의 독일 정부가 국내사정 등을 이유로 내년초쯤으로 예정해 놓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지난 8일 오데르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있은 콜 독일총리와 마조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간의 독파 정상회담에서 이달 안으로 체결키로 앞당긴 것이다.
콜 총리와 마조비에츠키 총리는 지난 8일 이밖에도 ▲내년 1월까지 선린우호조약에 관한 협상을 끝내며 ▲양국간 협력증진 위원회를 곧 설치하고 ▲베를린∼바르샤바간 고속도로를 91년 착공하며 ▲양국간 현안이 되고 있는 비자문제를 올해안으로 타결할 것 등에 합의 했었다.
이처럼 당초의 예상을 깨고 독파 국경조약의 체결날짜가 앞당겨진 것은 독일측의 양보로 이루어진 것이다.
폴란드는 그간 여러차례 구 서독측에 국경조약 체결을 요구해 왔다. 특히 오는 25일 대통령 선거에서 바웬사와 힘겨운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마조비에츠키로서는 선거 전에 이 문제를 마무리지어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고 싶은 정치적 고려도 작용,최근 들어 독일측에 국경조약의 조기 조인을 강력히 요구했다.
물론 독일 통일의 외부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독파 국경문제가 제기됐고 그때마다 「오데르­나이세강선은 항구 불변이다」는 내용은 거듭 확인됐었다. 최종적으로는 9월12일 체결된 「2+4」 조약에서 이 내용이 규정됐다.
그러나 독일 통일 논의과정 초기만해도 콜 총리는 우파들을 의식,『독파 국경문제는 통일 독일 정부와 의회가 결정할 문제』라며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구 동서독 의회는 지난 6월말 오데르­나이세강선의 국경을 재확인했고 겐셔 외무장관은 7월17일 폴란드도 참석한 파리 동서독 및 승전국 회담 후 『독파 국경조약은 독일 통일후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체결될 것』이라고 약속까지 했다.
따라서 독일측의 명분 없는 조약연기는 국내외의 비판을 받아왔고 이 때문에 독일과 폴란드 사이는 최근 급속히 냉각됐다.
콜 총리가 국경조약의 조인을 미뤄온 것은 마조비에츠키 총리와 같은 이유,즉 선거를 의식한 때문이었다. 알프레드 드레거 기민당 원내총무 같은 사람은 『독파 국경조약이 조인되더라도 의회에서 비준시키지 않겠다』며 『통일 독일은 이제 강자의 입장에서 폴란드와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등 우파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콜 총리는 「국경조약」이라는 말은 가급적 쓰지 않고 이 조약을 경제협력에 초점을 맞춘 독파 선린우호조약과 묶어 내년초에 조인할 계획이었으나 폴란드의 요구에 양보한 것이다.
콜 총리가 이같은 양보를 한 배경은 두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는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나고 있듯 12월 총선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는 점이다. 슈피겔지 최근호는 52대 39로,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는 7일자에서 46대 31로 각각 콜 총리가 12월2일의 총선에서 사민당의 라퐁텐 후보를 앞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둘째 배경은 통일 독일정부의 대 동구권 적극외교를 들 수 있다.
최근 체코를 방문했던 겐셔 외무장관이 체코측과도 조만간 선린우호조약을 체결키로 합의하는 등 통일 이후 독일은 자신의 통일에 대해 그간 우려해온 주변국들,특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구국가들에 대해 경제원조를 기초로 한 선린외교의 의지를 여러차례 밝혀왔다. 즉 통일 독일의 동쪽 국경이 「빈부의 경계선」이 되지 않도록 독일은 이들 동유럽국가들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밖에 오는 19일 파리에서 열리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서 그간의 통일과정등에 대해 브리핑하기로 돼 있는 콜 총리로서는 그때까지 독일 통일의 외부문제중 핵심적인 문제였던 폴란드와의 국경문제를 마무리 짓지 않을 경우 국제적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란 점도 계산에 넣은 것으로 볼 수 있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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