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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감동적인 가족사&순애보

중앙일보

입력

여성중앙

“교통사고로 사망한 부친 가해자 눈물로 용서한 사연,

고3 때 만난 아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자율 가르친 1남 2녀 교육법”

지난 10월 14일 반기문 외교부장관이 만장일치의 전폭적인 지지로 유엔사무총장에 임명됐다. 192개 회원국을 거느리는 명목상 ‘세계 대통령’의 자리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지명은 분명 나라의 ‘경사’이나, 실제 본인은 숱한 축하 속에서도 향후를 떠올리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터. 사람과 사람, 즉 1:1의 인간관계도 한 번 ‘삐끗’하면 조정하는 게 쉽지 않은 법인데, 촘촘히 얽힌 각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위치란 얼마나 복잡 미묘할 것인가. 반 총장의 취임 인터뷰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세계 각국의 난제를 조율하는 ‘하모나이저’가 되겠다.”

지인들이 말하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성공 키워드 4 …외교관 생활 40년. 쉽지 않았을 그 직책의 기본은 ‘하모나이징’(조화)이었으리라. 그렇다면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초일류급 ‘하모나이저’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사람을 대하는 부드러운 태도와 친화력, 신뢰와 결단력이 중요하지 않을까. 결단력은 두고봐야 한다는 평가만 빼면 반 총장의 평점은 이미 90점 이상이다.

반 총장을 두고 나오는 주변의 공통된 평가는 “적이 없다는 것.”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 스타일인 그는 화를 낼 때도 친근한 미소를 잃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반 총장은 외교부에서 ‘부드러운 남자’로 통했다. 친화력과 관련해서는 이 같은 말이 회자된다. 그를 다소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도 그와 30분만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인간적 매력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신뢰’와 관련해서는 반 총장 자신이 직접 한 말이 있다. 유엔사무총장 취임 후 언론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생활 철학을 묻는 질문에 “항상 나 자신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노력을 많이 해왔다”고 밝혔다. 외교 원칙을 두고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상대방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점이다”면서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는 워커홀릭이었다.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집념’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만들어왔다. 가족들에게 반 총장과 관련, 잊지 못할 추억을 꼽아달라고 하면 이구동성으로 ‘늘 책상머리에 앉아 있던 모습’을 떠올린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 습관은 변치 않았다.

그의 일에 대한 집념을 알려주는 두 가지 일화가 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협상이 한창이던 1991년 부친상을 당하고도 그는 협상이 마무리된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빈소를 찾았다. 지난 2001년 일이 어긋나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야 했을 때, 반 총장은 그렇게 고생한 게 억울했던지 “지난 31년간 단 1시간도 나를 위해 쓴 적이 없는데…. 죽고 싶다”며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늘 자신보다는 일이 우선이었다는 반 총장. 외교관 시절 겪었던 몇 번의 굴곡을 어떻게 극복했는가란 질문에 이런 답을 내놓은 적이 있다.

“나는 낙관주의자다. 사물을 보는 데 어려운 면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사고로 그 상황을 보려고 노력한다.”

부드러움은 타고난 것, “반씨네가 모두 유하지, 뭐” …

그렇다면 반 총장은 어떤 시절을 거쳐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일까. 그를 유엔의 수장의 자리에까지 올린 밑바탕은 어디서부터 형성된 것일까. “반씨네가 모두 유하지, 뭐.” 반기문 총장의 고향에서 만난 한 어르신의 말이다. 반 총장의 부친과 친분이 깊다는 이 노인은 반 총장이 지닌 ‘부드러움’의 원천이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단언했다. 반 총장 부친의 별명은 ‘충주 양반’이었다고 한다.

“술을 즐겨 하신 양반인데, 아무리 술을 먹더라도 취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어. 늘 미소를 짓고 있었지. 그 마음씨가 있었으니까, 지금의 (반)기문이가 있는 거여.”

충북 음성 행치마을에서 태어난 반 총장은 이곳에서 3년 정도를 지낸 뒤 충주로 이사를 갔다. 따라서 고향 사람들에게 특별한 기억은 없다. 그래도 고향 사람들은 어린 시절 반기문이 천재였고, 예의범절이 남달랐다고 회고한다.

“‘이 놈아, 공부 잘 해’라고 하면, 기문이가 ‘네, 어르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며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고. 그런데 그 인사가 평범치가 않았단 말여. 보통 애들이면 까닥 고개만 끄덕이고 말 텐데, 기문이는 90도로 꾸벅 절을 하더란 말여. 그래서 그 놈 참 기특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 당시면 어느 가정이나 그랬겠지만, 반 총장의 집안 역시 형편이 넉넉하지가 않았다. 한때 공무원 생활을 했다는 부친은 손 댔던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고 한다. “덮어놓고 점잖은 양반”이라는 반 총장 부친의 사망과 관련해 가슴 아프면서 한편으로 훈훈한 미담이 있다. 부친은 지난 1991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국가적인 일을 처리하느라 장례에 뒤늦게 참석한 장남의 마음이 얼마나 쓰라렸을까. 얼마 지난 뒤 교통사고 가해자가 경찰에 붙잡혔다고 한다. 그러나 반 총장은 “그냥 풀어 달라”며 쉽지 않았을 마음의 용서를 했다고 한다. 이 후일담은 고향 주민들 사이에서 반 총장을 존경하는 아름다운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한편 반 총장의 임명 소식 이후, 반 총장의 고향에는 풍수 전문가들의 발걸음이 잦다. 그곳에서 만난 한 풍수 전문가는 세 개의 봉우리로 이뤄진 조덕산을 두고 “학이 날갯짓을 하는 형상”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이 태어난 집은 학의 배 부분이란 해석. 이런 지형에서 태어난 사람은 온유하고 주변에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 특히 오른쪽 봉우리가 강한 기운을 갖고 있어 고향에서보다는 타향에서 인정을 받게 될 형국이라고 했다.

반 총장의 어린 시절, 늘 책상 맡에 앉아 있었다 …
반 총장의 동생 반정란씨(55·목행초등학교 교사)는 “싸우는 대신 포용한다”는 반 총장의 스타일이 어렸을 때부터 형성됐다고 회고했다. 반 총장 집안은 여섯 형제다. 당시에는 대가족이 일반적이었고, 자연히 형제들이 많다보면 치고받는 일이 다반사다. 집안의 장남인 반 총장은 형제들 사이의 수장인 셈이다. 그 위치에서 반 총장은 “지나친 개입은 오히려 싸움을 부추긴다“는 무개입 원칙을 견지했던 듯하다. 집안의 맏이가 분쟁에 개입하지 않고, 공부에 매달리는 걸 보면서 싸우던 형제들이 머쓱해지고, 자연스레 싸움이 잦아들면서 우애가 깊어졌다는 것이다.

반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공부’와 관련, 이런 훈계를 자주 했다고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반기문이만 같아라”는 게 그것이다. 고향인 충북 음성에서는 ‘천재’로 통하고, 초중고를 마친 충주에서는 ‘수재’로 통한 반 총장은 영어 등 특히 어학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면 조기 영어 열풍이 불어 닥친 요즘과 비교해 영어는 큰 관심 종목이 아니었을 때다. 일찍부터 보여준 반 총장의 영어 사랑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런 추측이 가능하다. 6·25 이후 한국에 머물던 미군이나 선교사 등 미국에 대한 호기심이 잠재적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미국이란 나라에 국한된 게 아니라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반 총장은 사무총장 수락 연설을 하면서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다그 함마르셸드 당시 유엔사무총장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1956년 체코 프라하의 봄 소식을 듣고 당시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냈던 편지에는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자유민주시위를 유엔이 도와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어른들의 혀를 내두르게 할 ‘당돌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일찍 자리 잡기 시작했음을 알려주는 일화다.

지독한 영어 사랑, 충주 비료공장에서 미국인 기술자와 실전 영어 회화 …

1_1994년 주미대사 시절 워싱턴 공사관저에서 부인과 함께. 2_1970년 서울대학교 졸업식 때 연인 유순택과 함께. 3_케네디스쿨 재학 중 1984년 보스턴 자택 앞에서. 왼쪽 위부터 부인 유순택, 맏딸 반선용, 반 총장, 막내딸 반현희. 4_충주고 3년 때 적십자 비스타(VISTA) 프로그램에 선발돼 미국을 방문하기 전 공항에서. 5_적십자 비스타 프로그램 선발자로 선정된 반 총장은 미국 백악관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다. 케네디 오른쪽에 보면 가려진 반 총장이 보임. 6_충주중학교 시절 동생들과.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반 총장.

중학교 시절, 반 총장은 3년치 영어 교과서를 통째로 외워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다. 반 총장은 실전 회화를 배우고자 미국인 앞에서 유독 적극적이었다. 그가 실전 영어를 배운 것은 충주 비료공장을 통해서다.

여기서 어머니 신현순씨의 지대한 역할을 간과할 수 없는데, 신씨는 장남의 영어 공부를 위해 주변의 선교사 회화 모임 등을 적극 알아봤다고 한다. 당시 비료공장에는 미국인 기술자가 있었고, 반 총장은 이들 원어민과 어울려 실전 회화를 익혔다고. 그렇다고 영어 공부가 그리 쉬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반 총장의 일기장에는 “미국인 부인들이 왜 나를 안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친해지면 더 많은 영어를 배울 텐데 아쉽다”는 고뇌(?)가 담겼다고. 충주고 1학년 때는 반 학생을 위해 영어 교재를 만들었다는 반 총장. 덕분에 그는 적십자사가 주관한 영어웅변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이름을 날렸고, 이를 계기로 ‘미국 방문’이란 커다란 기회를 잡게 된다.

당시 적십자사는 외국 학생의 미국 방문 프로그램인 ‘비스타(VISTA)’를 주관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4명의 학생을 뽑았는데, 여기에 반 총장이 포함되면서 충주시가 들썩거렸다. 이듬해인 고 3 여름방학 때 반 총장은 말로만 듣던 미국을 방문하게 된다. 당시 존 F.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그는 장래 꿈을 묻는 케네디의 질문에 유창한 영어로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과 찍은 기념사진은 반 총장이 외교관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목표가 흐려지거나 힘들 때마다 두고두고 되새기는 나침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아내 유순택씨의 10년 러브스토리&내조기 …

고3 여름은 그의 인생에서 또 하나의 특별한 의미를 만들었다. 미국 방문을 앞둔 반 총장을 위해 충주여고에서는 미국인들에게 선물로 줄 복주머니를 만들었다. 미국으로 떠나는 반 총장에게 복주머니를 전달한 사람은 충주여고 학생회장이었다. 이 여학생이 바로 부인 유순택씨다.

이때 맺은 인연은 10년 사랑으로 이어졌고, 반 총장은 외무고시에 합격한 후 유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유씨는 중앙대학교 도서관학과 출신. 도서관 사서로 직장을 다니면서 반 총장의 공부를 내조했다. 반 총장이 허다한 유혹에 빠지지 않고, 게을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신뢰할 수 있는 ‘오래된 연인’이 곁에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가족들은 반 총장의 인연을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반 총장 부인에 대한 가족 등 주변의 평가는 “정중동”으로 볼 수 있다. 말수가 적고 차분하며, 무엇보다 겸손이 몸에 배었다는 것이다.유씨의 겸손함은 아랫동서한테도 늘 존댓말을 쓰는 데서 도드라진다. 기본 성품이 온유하고 화를 낸 적이 없다는 것은 반 총장과 닮은꼴이다. ‘부부 간 대화법’에는 재미난 구석이 있다. 부인이 꼭 필요한 말만 하는 탓에 되레 집에서 농담이나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남편 반 총장이라는 것이다.

“침묵이 금이다”는 말이 있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인간관계에 탁월하다. 사람은 특별한 충고나 조언을 하지 않더라도, 편안하게 들어주는 것만으로 위안을 얻곤 한다. 부인 유씨의 특별 내조법이다. 결국 반 총장이 업무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이해심이 큰 역할을 한 셈이다. 결혼 직전 유씨의 어머니는 딸에게 “남자가 해지기 전에 집에 오는 것은 직업이 없거나 큰 병을 앓고 있을 때이니 반 서방이 늦게 들어오는 것에 대해 뭐라 하지 마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반 총장 부부는 1남 2녀를 뒀다. 맏딸 선용씨(36)는 현재 아시아재단 사업부장으로 근무하고 있고, 미혼인 아들 우현씨(33)는 미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다. 공학도인 아들은 “아버지처럼 힘 안 들이고 돈 버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재미난 전공 선택의 이유를 말하고 있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인 아버지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자녀는 막내딸 현희씨(31)다. 현희씨는 유엔아동기금(UNICEF) 케냐 사무소에서 국제기구 초급전문가(JPO)로 일하고 있다.

자녀 교육의 원칙이 궁금하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장남인 반 총장이 부모의 뜻에 반하지 않고, 묵묵히 의중을 헤아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교육의 원칙에 있어서도 대물림이 있지 않을까, 라는 짐작을 해본다. 반 총장 부모는 공부를 강요한 적이 없고, 진로 역시 자녀들의 자율적 의사에 맡겼다고 한다. 반 총장의 부친은 한때 장남이 의사의 길을 걷기를 바란 적도 있다지만, 결국 반 총장은 외교관의 길을 걸었고 끝내 꿈을 이루었다.

한편 가족을 무던히 사랑하는 반 총장이지만 공과 사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딸을 결혼시킬 때에도, 혹시나 오해 살 일이 있을까봐 주변에 알리지 않았던 것. 상관 이외에는 대부분 결혼식이 끝난 후에야 공지를 보고 알게 됐다고 한다. 나랏일을 하는 가장으로서 반 총장의 일면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장남 위해 50년 불공, “어머님, 유엔 공관에 함께 가실 거죠”…

마지막으로 반 총장의 성공을 두고 빼놓을 수 없는 한 분이 있다. 그의 어머니 신현순 여사(86)가 주인공이다. 어머니의 맏이 사랑이 어디 가겠냐마는, 신 여사의 장남 사랑은 지극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는 자주 불공을 드리는데, 대부분 장남의 승승장구를 기원하는 터라 다른 자녀들로부터 “우리를 위해 조금만 기도해 달라”는 투정을 받기도 했다고.

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 위치에 거론되면서부터 어머니는 새벽 불공을 거르지 않았다. 노환으로 몸이 아플 때도 새벽 3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특별한 체력관리를 하지 않는데도, 탁월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는 반 장관. 그는 건강 관리법으로 타고난 체력과 낙관적인 마음을 꼽는다. 하지만 그 뒤에 몸에 좋은 음식이 생기면 장남부터 챙겼다는 어머니의 정성이 녹아 있다.

반 총장은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자, 거듭 외교부 공관에서 머무르기를 바라지만, 어머니는 ‘심심하다’는 이유로 고사 중이라 한다. 어쨌든 장남 집에 머물면 노모에게 신경이 쓰이는 법. 일에만 매진하라는 어머니의 마음이 읽히기도 한다. 그런 노모를 위해 반 총장이 외국 출장길에 오를 때면, 출국 전에 한 번, 도착하면 한 번, 노모에게 안부 전화를 잊지 않는다 한다.

유엔사무총장은 중임하는 게 관례인 만큼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10년 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유엔의 수장이란 막중한 부담감에 앞서, 반 총장이 고민하는 바가 있다. “어머님, 이번에는 아들과 함께 유엔 공관으로 동행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효심 깊은 장남의 제안에 어머니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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