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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I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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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현숙 기자 중앙일보 기자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지난주 ‘CPI’ 세 글자가 얼어붙었던 전 세계 금융시장을 녹였다. 바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onsumer price index)다. 10일 미 노동통계국은 10월 소비자물가가 지난해보다 7.7% 올랐다고 발표했다. 전달보다 단 0.5%포인트 내렸고 상승률은 7%를 여전히 웃도는데 시장은 환호했다. 예상했던 7.9%보다 낮다는 이유에서였다. 물가를 잡겠다며 살벌하게 금리를 올리고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긴축 고삐를 늦출 것이란 기대에 주가는 오르고 환율은 안정을 찾았다.

금융시장을 울고 웃게 하는 CPI는 전쟁 속에서 탄생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미국 조선업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군함과 화물선을 만드느라 자금이 밀려 들어오는데 물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생필품 가격이 치솟자 ‘이 돈 받곤 못 산다’는 노동자의 불만이 컸다. 적정 임금을 책정하기 위해 노동통계국은 92개 산업 도시에서 한 가족이 먹고사는 데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품목별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2년 준비 후 1919년 첫 CPI가 공표됐다. 통계청이 아닌 노동통계국이 지금도 CPI 발표를 맡고 있는 건 이런 역사 때문이다.

물가가 오르면 금리도 오른다. ‘해는 동쪽에서 뜬다’처럼 당연한 명제 같지만 사실 발명에 가깝다. CPI 자체가 원래 통화정책 지표가 아닌 임금 책정 기준이었다. 물가 안정 수단으로 금리를 활용한 역사도 30~40년밖에 안 된다.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인물이 바로 ‘인플레 파이터’ 폴 볼커 전 미 Fed 의장이다. 베트남 전쟁과 오일쇼크가 불러온 1970~80년대 초고물가 위기를 연 20% 이르는 금리 처방으로 해결한 인물이다.

주춤한 물가에 시장이 환호하고 있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7% 물가 상승률은 Fed 목표(2%)와 여전히 거리가 멀다. 중앙은행이 치열하게 물가와의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방치된 고물가의 끝은 언제나 극심한 경기 침체였기 때문이다. Fed도 경험으로 안다. 금리 인상 폭이 줄고 인하 시기가 빨라진다는 건 순전히 시장의 기대다. 현 Fed 의장인 제롬 파월은 “숫자를 말하거나 날짜를 말해라. 둘 중 하나만 해야지 둘 다 해선 안 된다”는 볼커의 격언을 충실히 지키는 중이다.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