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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사과는 패자 아닌 리더의 언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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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호 31면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현 정부의 이상한 특징 중 하나는 좀처럼 ‘미안하다’라고 말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 유죄와 무죄를 다투는 법정의 태도일지 모르나, 상식과 도의에 바탕을 둔 리더의 태도는 아니다. 상식에 기대고 정의의 감정에 비추어 말할 것을 자꾸 법에 비추어 판단하면, 사람들 미움을 사는 건 분명하다. 잘못이 있는데 미안하다고 말할 줄 모르는 권력자에 대해서 흔히 국민은 지지를 거두고 이별을 선고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156명의 억울한 희생자가 생긴 참사 앞에서도 권력자들은 사과의 마음이 별로 없어 보였다.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책임을 피하려고만 했다. 한덕수 총리는 외신기자를 모아놓고 웃으며 농담을 늘어놓았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다”라고 변명했고,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구청이 할 일을 다 했고, 이는 축제가 아니라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에 사과하는 마음 없어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책임 회피
사람들의 마음 몰라도 너무 몰라
진정한 사과가 사태 수습의 첫걸음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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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대신 사망자로, 참사 대신 사고란 말을 쓰도록 행정 지침을 내린 것은 정부의 집단 무의식을 드러낸다. 비극적 사고이지만 전적으로 희생자들의 잘못이니, ‘내 책임 묻지 말라’라는 뜻이다. 장례비와 위로금 등 돈은 풀지만, 한마디 사과의 말은 극도로 아낀다. 이는 참사의 전모가 밝혀지기도 전에 우발적 사고라는 프레임부터 강변하는 시도로만 느껴진다. 사람들 마음을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한 불감증이고, 비통한 슬픔으로 괴로워하는 국민을 위무하기는커녕 버림받았다는 참담한 느낌을 부른다. ‘정부가 국민을 포기했다.’ 안전의 최선은 예방이고, 이는 크고 작은 사고가 예상될 때 정부가 당연히 할 일이다. 참사 당일, 경찰 내부에서 줄줄이 벌어진 난맥상을 보면, 정부의 무책임한 행태는 시민들 눈높이를 무시하고 그 마음을 울분에 빠뜨리는 무례한 행위로 보인다. 대통령은 4일 “죄송한 마음”이라고 밝혔으나 늦은 감이 있다.

미국 언어학자 에드윈 L 바티스텔라 서던오리건대 교수는 ‘공적 사과의 언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연구해 왔다. 그가 쓴 『공개 사과의 기술』에 따르면, 공인의 사과는 적당한 핑계나 어물쩍한 변명, 능숙한 자기변호여서는 안 된다. 공적 사과는 잘못에 대한 사회적 공유를 통해서 공통의 이해를 촉진하는 대화의 과정으로, 정확하고 정중한 사과는 공동체 안에서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화해 기반을 구성하고 일상을 되돌리는 출발점이다. 사과는 패자나 약자의 언어가 아니라 리더의 언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고개 숙여 미안하다고 말하는 일이 언제나 사태 수습의 첫걸음이다.

사과(謝過)의 사(謝)는 본래 ‘이별의 말을 늘어놓고 떠나가다’라는 뜻이다. 당연히 이는 책임을 포함한다. 책임을 인정하고 자리에서 떠나려는 사람을 돌려세울지, 떠나게 버려둘지를 정하는 주체는 ‘듣는 사람’이다. 참사의 성격을 임의로 예단하고 한계를 흐리면 안 됐고, 끔찍한 재앙이 일어난 데 대한 도의적 책임을 명확하게 표현해야 마땅했다. 핑계로 가득하고 자기변호에 오염된 사과는 결국 자기 합리화에 그칠 뿐이다.

어떤 사람 또는 집단은 사과 요구를 번번이 무시한다. 자신의 잘못을 적시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대신,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면서 ‘대안적 진실’(거짓말의 다른 이름이다!)을 앞세워 상대를 공격하기도 한다.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확신이나 쓸모없는 자존심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으킨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그랬다. 그는 “사과가 체면을 손상하는, 즉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존경심을 잃는 사태”를 초래할까 두려워서 “자신의 잘못에 직면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러한 리더는 사회적 신뢰를 완전히 상실한다.

바티스텔라는 ‘완전한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완전한 사과란, 사과하는 이가 자신의 수치심과 유감을 표명하고, 행동 규칙 위반을 분명한 언어로 인정하며, 그에 따른 사회적 배척에 공감하는 것을 포함한다. 또한 자신을 ‘비난받아 마땅한 자아’와 ‘처벌에 공감하는 자아’로 분리해서, 전자를 비판하고 후자로서 올바른 행동을 하겠다고 약속할 필요가 있다. 일찍이 공자는 “군자는 허물 고치기를 꺼리지 않는다”라고 했다. 리더는 이러한 성숙한 행동을 통해 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

진정성 없는 사과의 언어나 어설픈 유감 표명은 듣는 사람의 가슴에 모욕감을 일으키고, 그 마음을 상하게 하며, 분노의 불길을 타오르게 한다. 바티스텔라는 경고했다. “불충분한 사과는 새로운 빌미를 만들거나 사과 요구로 회귀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잘못된 사과는 사회적 신뢰 회복과 공적 치유의 첫걸음이기보다 시민들 가슴에 못을 박아서 분노와 저항의 빌미가 되기 쉽다는 말이다.

『사과 솔루션』에서 아론 라자르 미국 매사추세츠 의대 교수는 말했다. “사과는 정직, 관대, 겸손, 헌신,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다.” 정치적 리더는 유죄일 때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공적 시스템의 잘못을 찾아내고 화해의 공동체를 이룩하려고 할 때도 책임져야 한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 총리나 헬무트 콜 독일 총리가 전쟁 범죄를 사죄한 일은 갈등을 해결하고 고통을 치유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열어젖히기 위해서였다. 참사가 국민의 트라우마로 남지 않도록 부디 본받았으면 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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