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명품 아파트 죽이기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얼마 전에 국내에서 짝퉁 명품시계 사건이 있었다. 평범한 시계인데 유럽산 명품이라고 선전해 파니까 터무니없는 고가에 팔리더라는 내용의 사건으로 기억된다. 당시 언론에서는 그 짝퉁시계를 산 사람들을 비난하고 그들을 추적해 비웃는 기사들을 실었고 지목된 당사자들은 “단지 선물로 받았다”는 식으로 변명해야 했다. 그들이 주로 여성이었는지 네티즌 세계에서는 “된장녀”라는 이름을 붙여 그들을 폄하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 에피소드에서 우리나라 경제가 안고 있는 중요한 문제점의 한 가지가 드러난다. 소비자 주권이 시민, 즉 소비자들 자신에 의해 억압되고 있는 것이다. 소비는 낭비이니 소비자는 검소해야 한다는 의식이 우리 사회에 강하게 뿌리박고 있어 “불요불급한” 재화의 소비자로 하여금 죄의식을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오죽 명품에 미쳤으면 그랬겠느냐”하는 것이 언론과 네티즌들의 재판이었던 것이다. 소비를 낭비로 간주하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은 한국 경제의 고(高)부가가치화(化)에 크나큰 장애물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보다 더 잘살려면 국내의 산업이 생산하는 상품이 나날이 고부가가치화되어야 한다. 생산활동과 산업발전은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욕구에 의해 선도(先導)된다. 산업이 고부가가치화되려면 우선 국내 소비자들이 고부가가치 상품을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해외 고부가가치상품 시장으로의 진출 기반도 마련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고부가가치 상품에 대한 소비자 욕구가 아직 강하게 표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한국의 산업이 전반적으로 고부가가치상품 생산능력 개발 투자를 게을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은 그러한 욕구가 없거나 적은 것이 아니다. 짝퉁 명품시계 사건이 이 점을 말해준다. 단지 “소비는 낭비다”라는 사회적 잠재의식이 있어 그것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의 에피소드는 누가 그러한 사회적 잠재의식을 지속시켜 주는지 보여준다. 언론이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앞장서고 있은 것이 정부다. 그래서 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경제 선진화가 저해되고 있다.

현 정부의 주택정책은 많은 전문가가 예언했던 대로 실패하고 말았다. 근본원인을 살펴보면 그 정책이 서울 강남의 명품 아파트들에 대한 위정자의 적대감에서 나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세금폭탄”을 투하해 그 수요 자체를 죽이고자 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국민의 소득수준이 올라가고 그에 따라 소비자 욕구가 선진화되며 명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처사다. 특히 생활환경에 대한 욕구가 그러하고 그중 특히 주택에 대한 욕구가 그러하다.

이제는 그처럼 천편일률적으로 멋없고 삭막해 보이는 시멘트 덩어리이면서 내부의 기능적 디자인도 빈약한 아파트로부터 나오고 싶다는 것이 국민 일반의 욕구인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그 욕구를 충족해 주려 하기보다는 그 자체를 부유층 국민 2%만의 사치인 것으로 부각시키고 공격했다.

여기에는 우리가 빈한했던 시절 고착되어 버린 “소비는 낭비다”라는 정책관이 작용했다고 보인다. 그래서 특별소비세가 아직도 건재하기도 하다. 이제 위정자와 정부는 이러한 빈품(貧品) 정책들을 버려야 한다. 경제의 성장과 선진화에 장애가 된다. 명품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양수길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원장
[sgy@ms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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