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포장은「상품의 옷」과 같은 것|포장디자이너 양찬석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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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옷이 날개」 라고 하는 것은 어떤 옷으로 치장을 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모습마저 달라져 보인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상품이라도 포장에 차이가 있다면 마치 그 속에 들어 있는 상품의 질도 다르게 보여진다.
따라서 지금까지 단순히 상품을 보호하거나 운반을 위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던 포장이 이제는 상품의 가치를 높여 줌으로써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때문에 웬만한 대기업에서는 자체적으로 포장디자이너를 두고 자사 제품의 포장을 해결하고 있으며 10여 년 전부터는 이를 전문적으로 대행해 주는 포장디자인 업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 전국의 포장디자이너는 줄잡아 5백 명선.
서울디자인센터의 제작본부장인 양찬석씨(38)는 경력 13년째인 베테랑 포장디자이너다.
영남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한 양씨가 포장디자인과 인연을 맺은 것은 4학년 때 우연히 미도파백화점에서 열린「해태 그래픽디자이너 13인 전」을 보고 나서부터.
『당시만 해도 포장디자인이 뭔지 몰랐는데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충격을 받고 그 길로 포장디자인을 배우게 됐습니다.』
포장디자인을 시작한지 5년이 돼서야 비로소 눈을 뜨게 됐다는 양씨가 지금까지 다룬 작품은 월 평균 10건 정도로 무척 많은 편.
일단 디자인 의뢰를 받으면 경쟁사 제품, 시장의 흐름, 소비자 취향, 연령 분포도 등의 정보수집을 거쳐 아이디어를 모집, 서너 개의 시안을 작성한 후 의뢰인과 함께 최종안을 결정한다.
이후 인쇄와 교정·감리 까지 끝내야 한 개의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데 이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보통 보름에서 한달 정도.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제품이 출하된 후에도 계속해서 소비자 취향의 변화를 추적, 그에 맞게 디자인을 변형시키는 게 중요하다. 이는 제품의 생명을 오래 지속시키기 위한 것으로 양씨는 실제로 10년 동안 한 제품의 포장을 15번이나 재 디자인한 경험도 있다.
현재 포장디자인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곳은 역시 화장품과 식품업계.
제품의 질에 큰 차이가 없는 만큼 포장수준에 따라 경쟁력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고객이 상품을 보고 지나가는 시간이 보통 0.2∼0.3초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짧은 시간동안 고객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디자인을 고안해 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기업들의 포장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합니다. 광고비에는 수백 억 원씩 투자하면서도 포장디자인에 대한 투자는 인색합니다. 더구나 중소기업의 경우 별다른 생각 없이 외국 포장을 모방하고 있는데 지적소유권이 본격적으로 적용될 때 문제가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수출상품의 경우 기술이나 품질은 좋으면서도 포장수준이 낮아 외면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손장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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