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크라 전쟁, 승자는 미·중" "北 김정은도 주시" 한불클럽 회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불클럽ㆍ불한클럽 올해 회의가 6~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 중이다. 사진은 7일 프랑스 외교부 청사에서 진행된 회의 현장. 파리=전수진 기자

한불클럽ㆍ불한클럽 올해 회의가 6~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 중이다. 사진은 7일 프랑스 외교부 청사에서 진행된 회의 현장. 파리=전수진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은 수년간 이어질 수도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라도 출구전략 없이는 핵무기를 사용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다. 이 전쟁의 승자는 결국, 미국과 중국이 될 것이며 푸틴 대통령은 원치 않는 결과만을 초래하게 됐다.”(장-다비드 레비트 전 프랑스 대통령 외교 고문)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해결할지는 아시아에도 함의가 크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마오쩌둥(毛澤東)급 지도자로 영구집권을 하려는 시점에서 타이완 합병을 계기로 삼을 거란 예상이 나오는 상황에서, 시 주석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사태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홍석현 한불클럽 및 중앙홀딩스 회장)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외교부 청사에서 개최된 한불클럽ㆍ불한클럽 회의에서 양국 참석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사회 및 경제에 갖는 구조적 함의를 분석했다. 한불클럽ㆍ불한클럽은 양국 지도층 인사들이 수교 130주년을 맞은 2016년 양자 관계 발전 및 교류를 위해 출범시켰다. 매년 양국을 오가며 열려오다 팬데믹 시기엔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이날 회의는 팬데믹 후 첫 대면회의다. 프랑스 측은 이날 회의를 위해 유서 깊은 키 도르세이(Quai d‘Orsay) 외교부 청사의 철문을 열었다. 프랑스 외교부 청사는 1855년 완공됐으며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된 장소이기도 하다.

프랑스 외교부 청사 회랑에 놓인 유럽연합(EU)기와 프랑스 국기. 파리=전수진 기자

프랑스 외교부 청사 회랑에 놓인 유럽연합(EU)기와 프랑스 국기. 파리=전수진 기자

이날 회의의 주요 화두는 단연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외교ㆍ지정학, 에너지ㆍ원자력과 우주 협력, 소프트 파워 및 문화 분야로 나눠 진행된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함의와, 한국과 프랑스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각도로 진단했다. 회의가 진행된 7일은 푸틴의 70세 생일이기도 했다.

“푸틴 핵무기 사용할까, 北 김정은 위원장도 주시”(홍석현 회장)

외교ㆍ지정학을 다룬 세션1의 첫 발표자인 홍석현 한불클럽 회장은 우선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반도 안보에 도움이 안 되는 여러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며, 이에 어떻게 대처할지가 새 정부 외교의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한국의 대처 여하에 따라 러시아와 중국은 한국에 대해 더욱 대립각을 세우면서 동시에 대북 지원을 노골화할 소지도 있다”며 “당분간은 남북 간 북ㆍ미간 갈등은 심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 회장은 특히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북한에 갖는 의미에도 주목했다. 홍 회장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는 북한의 관점은 독특하다”며 “북한은 우크라이나가 핵보유국이 아니기에 침공을 받았다고 보고 자신의 핵 능력에 대한 집착을 강화할 것이며, 북한의 도발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북한은 이달 들어서만 4일과 6일 이틀에 걸쳐 미사일 발사실험을 했다. 홍 회장은 또 “2022년의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정세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과 북한 간 군사 도발 긴장이 높아지던) 2017년의 데자뷔”라며 “푸틴이 핵무기를 사용할지를 김정은 위원장이 주의 깊게 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달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 정책 관련 법령을 채택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달 12일 공개한 사진이다. 노동신문=뉴스1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달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 정책 관련 법령을 채택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달 12일 공개한 사진이다. 노동신문=뉴스1

프랑스 측 발표자 레비트 전 고문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역사적 뿌리에 주목하며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설명했다. 그는 수년 간 프랑스 대통령들의 외교 책사였으며 주미 프랑스 대사도 역임했다. 그는 “푸틴은 스탈린의 후예로 러시아 제국의 재건을 꿈꾸고 있으며, 그 열망을 실현하는 첫 선택이 우크라이나 합병”이라며 “그러나 푸틴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폭격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러시아는 이제 우방 아닌 적국이라는 의식을 심었으며, 나토(NATO)를 뇌사 상태에서 깨운 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단단히 단합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레비트 고문은 특히 이번 전쟁으로 중국이 어부지리를 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강력한 국제사회 제재로 인해 러시아는 점점 빈곤화하고 있으며 중국의 독주가 더 뚜렷해질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은 이번 전쟁으로 원하지 않는 결과들을 초래한 셈이 됐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양국의 역할에도 주목했다. 레비트 전 고문은 “남북이 분단된 채로 미국ㆍ일본ㆍ유럽과 단합하고 있는 한국에 우크라이나의 평화정착은 중요한 이슈”라며 “미국ㆍ일본ㆍ유럽과 단합하면서도 남북 분단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 역시 역할과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나토(NATO)의 일원이면서도 러시아와 남다른 수준의 대화를 유지해온 프랑스가 전쟁 종식에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 역시 토론에서 “이번 전쟁으로 결국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존성이 전략적으로 높아졌다”며 “미국이 경제적으로는 보호주의를 다시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프랑스가 해야 할 역할을 중요성도 커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달 16일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에서 환담하는 푸틴(왼쪽)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AP=연합뉴스

지난달 16일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에서 환담하는 푸틴(왼쪽)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AP=연합뉴스

이어진 회의에선 에너지ㆍ원자력 및 우주협력 분야를 다뤘다. 참석자들은 양국이 협력을 강화할 여지가 크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양국의 우주 협력은 사실 그간 의미가 큰 성과를 꾸준히 내왔다. 그 주인공 중 하나가 프랑스의 우주 기업 아리안스페이스로, 그 최고경영자(CEO)가 불한클럽 회장을 맡고 있는 스테판 이스라엘이다. 한국의 지난 위성 발사 성공에도 아리안스페이스가 핵심적 역할을 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지난 7월 제임스 웹 망원경 발사를 의뢰한 곳도 아리안스페이스였다. 자국 아닌 프랑스 기업을 NASA가 택한 것이다.

포스텍 총장을 역임한 김도연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은 “한국과 프랑스의 우주협력은 성과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크다”며 “양국의 우주협력을 위해서도 한불클럽과 불한클럽이 할 수 있는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위기 대응 역시 중요한 주제로 다뤄졌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항공은 지난해 10월 세계 주요 항공사들과 함께 2050 탄소 중립 목표에 합의했다”며 “탄소중립항공유의 사용 및 신기종을 통한 효율성 제고 등의 구체적 이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은 에너지 주권, 한국과 협력 원해"(수리스 수석부회장)

또 다른 주요 화두는 원자력 분야 협력이다. 프랑스에서 에너지 분야 선도 기업인 탈레스의 파스칼 수리스 수석부회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역시 안보 이슈가 됐고, 동시에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 원자력의 중요성이 굉장히 커졌다”며 “저탄소 및 통제 가능하고 안정적인 원자력은 프랑스의 에너지 주권 독립의 길을 열어준다”고 말했다. 수리스 수석부회장은 “한국과의 협력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대종 주프랑스 대사도 “양국의 (원자력 분야) 협력은 역사가 오래됐으며 꾸준히 이뤄지고 있고,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진 교류 협력 등 추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불클럽 사무총장인 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 이사장은 “프랑스의 원자력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한국 정부와도 협력할 여지가 크다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류, 한국 사회 소외계층도 보듬으며 성숙"(펠르랭 전 장관)  

다음 세션에선 문화 분야의 양국 협력이 논의됐다. 한국계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최근 한국 문화계는 영화 ’기생충‘이나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보듯, 경제 발전에서 소외된 이들 역시 보듬으려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며 “단시간에 소프트파워 강국이 된 한국과 프랑스의 구체적인 문화 교류 협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 측 발표자로 나선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은 “새로운 미디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양국 간 문화협정 및 관련 법규 개정과 그를 위한 실무자 간 협의의 진행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한 영화 분야에서 양국 간의 공동 제작과 인적 교류를 늘리는 시스템을 치밀하게 구축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불클럽ㆍ불한클럽 올해 회의의 개막식 현장. 지난 6일(현지시간)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이다. 로랑 파비우스 전 프랑스 총리가 연설 중이다. 헤드테이블의 필립 르포르 주한프랑스대사, 유대종 주프랑스 한국대사, 홍석현 한불클럽 회장이 경청하고 있다. 파리=전수진 기자

한불클럽ㆍ불한클럽 올해 회의의 개막식 현장. 지난 6일(현지시간)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이다. 로랑 파비우스 전 프랑스 총리가 연설 중이다. 헤드테이블의 필립 르포르 주한프랑스대사, 유대종 주프랑스 한국대사, 홍석현 한불클럽 회장이 경청하고 있다. 파리=전수진 기자

앞서 6일 열린 리셉션에선 프랑스 총리를 지낸 로랑 파비우스 헌법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해 기후변화 위기에 양국의 공동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다. 7일 오찬은 대외 교역 및 투자매력도 담당 장관 올리비에 베흐트가 주최했다. 베흐트 장관은 "프랑스는 2030년까지 인공지능(AI) 등 신산업에 약 540억 유로(약 74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며, 한국 기업과의 협력도 기대한다"며 "양국 간 강력한 우호 관계 증진에 핵심 역할을 하는 한불클럽·불한클럽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