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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의 반란' 허 찔린 미국…"베네수엘라 제재 완화로 대응"

중앙일보

입력

유조선이 베네수엘라의 석유터미널에 정박해 있다. 5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를 완화해 자국 에너지기업 셰브런이 베네수엘라에서 석유 생산과 수출을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연합뉴스

유조선이 베네수엘라의 석유터미널에 정박해 있다. 5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를 완화해 자국 에너지기업 셰브런이 베네수엘라에서 석유 생산과 수출을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연합뉴스

중동과 미국이 글로벌 석유 공급량을 놓고 핑퐁 게임에 돌입했다. 5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OPEC+ 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23개 산유국이 오는 11월부터 하루 최대 200만 배럴을 감산하겠다고 하자, 미국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전략 비축유 방출과 함께 베네수엘라를 공급원으로 끌어들이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로선 석유 공급 부족에 따른 인플레이션 심화 우려를 좌시할 수 없다는 뜻으로 관측된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행정부가 그간 베네수엘라에 가했던 제재를 완화해 미 석유 기업 셰브런의 현지 석유 생산과 수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또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에 대한 대가로 오는 2024년 대선에서 '공정한' 선거를 치르기 위해 야당과 대화를 재개할 것이라고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베네수엘라는 1990년대 하루 최대 320만 배럴을 생산한 주요 산유국이었지만, 최근 10여년간 투자 부족과 관리부실로 인해 석유산업이 붕괴하다시피 했다. 특히 2020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로 서방 기업들이 철수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베네수엘라는 하루 약 45만 배럴을 생산 중이며, 이는 OPEC+ 생산량의 약 1%에 해당한다.

미국과 베네수엘라 간 협상은 지난 3월부터 진행됐지만, 최근 급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1일 자국에 수감 중이던 미국인 7명을 석방했으며, 미국은 이에 대한 대가로 마약 밀매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베네수엘라 영부인의 조카 두 명을 석방했다. 미 재계도 그간 바이든 정부에 베네수엘라 제재를 완화하라고 압박해왔다.

WSJ은 셰브런이 다시 생산을 주도하고 미국 정부가 수출을 승인하면 베네수엘라는 수개월 내에 원유 공급량을 2배로 늘릴 수 있으며, 2000년대 초반 누렸던 석유 시장 영향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또 미국과 베네수엘라 간 합의는 이달 말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정책 변화는 석유 공급 부족을 해결하려는 글로벌 시장에 긍정적인 시그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중남미 에너지 전문가인 프란시스코 모날디 텍사스주 라이스대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혼란을 겪는 가운데, 베네수엘라를 끌어들이는 전략은 새로운 에너지 공급원을 확보하려는 미국과 유럽에 장기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석유 가격이 내려간다면,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과 마두로 정권의 계획엔 난관이 남아 있다. 먼저 베네수엘라 야당은 반발했다. 야권은 이번 합의가 마두로 정권에 별다른 양보 없이 정권 유지의 길을 터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 3일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 측은 미국이 마두로 정권과 합의를 결정하기에 앞서 자신들과 협의해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미 고위관리에게 보냈다. 이들은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 기업과 셰브런 간 거래는 합법적이지 않다고 했으며, 이달 말 워싱턴에서 미국 관리들을 만나 이런 입장을 전할 예정이다.

미국 내에서도 마두로 정권에 대한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앞서 2019년 미국은 마두로 대통령 2기 취임에 반발한 과이도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으며, 바이든 정부도 마두로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보도가 나간 후 미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마두로 정권이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건설적인 조치"를 행하지 않는 이상 제재 완화 계획은 없다고 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미 재무부와 셰브런은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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