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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학종 준비했는데 수능 100% 날벼락...헌재 간 고등학생 [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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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93] 고1 내내 서울대 학종 준비했는데, 수능 100%로 바뀐 전형 계획…헌법소원 낸 고등학생

올해 고3인 A씨, 기계공학 발명가가 되는 게 꿈입니다. 한부모가정에서 자란 A씨는 서울대학교 입학을 목표로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특히 한부모가족 지원 대상자 등 저소득 계층 학생들을 위한 기회균형 특별전형Ⅱ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서울대 기회균형 특별전형Ⅱ는 2009학년도부터 2022학년도까지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학생 모집을 해왔습니다. A씨 역시 학생부 종합전형을 목표로 삼고 내신 성적이나 비교과 활동 등을 열심히 쌓으며 고등학교 1학년을 보냈죠.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막바지이던 2020년 10월, A씨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공지가 뜹니다. A씨가 도전할 2023학년도 입시에는 서울대가 기회균형 특별전형Ⅱ를 수능 100%로 선발하겠다고 한 겁니다. 서울대는 이와 같은 '2023학년도 대학 신입학생 입학 전형 예고'를 게시했고, 2021년 4월에 이를 확정했습니다.

2023학년도 서울대 신입학생 입학전형 시행계획 일부.

2023학년도 서울대 신입학생 입학전형 시행계획 일부.

A씨는 "1학년 생활을 거의 마칠 무렵까지 학생부 종합전형을 준비한 학생이 갑자기 수능 위주로 입시 준비를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가 '신뢰 보호 원칙'을 위반했다며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같은 기회균형 특별전형일지라도, 농어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Ⅰ'전형은 여전히 수시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모집하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것입니다.

관련 법령은?

A씨 측이 이야기하는 '신뢰 보호 원칙'은 법치국가 원칙으로부터 도출되는 헌법상 원칙입니다. 어떤 제도가 그대로 존속될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국민이 어떤 법적 지위를 형성했을 경우, 국가는 해당 제도를 고치거나 없앨 때 국민의 신뢰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 환경이나 경제 여건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국가가 개별 국민이 가지는 기대나 신뢰를 모두 보호할 수는 없겠죠. 이 때문에 헌재는 신뢰가 얼마나 손상됐는지, 신뢰의 이익을 보호할 만 한지, 또 제도의 목적은 어떤지 등을 종합해서 살펴봅니다.

이 사건에는 교육에 관한 헌법 조항들도 얽혀있습니다.

헌법 제3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합니다. 이때 '기회 균등'이란 국민 누구나 교육에 대한 접근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한편 같은 조 제4항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합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대학의 자율은 비단 시설 운영에만 국한하는 것은 아니라고 결정한 바 있습니다. 교과과정을 편성하거나 학생을 선발하는 등의 과정도 대학 자율의 범위에 속한다는 것이지요.

서울대 정문

서울대 정문

헌재 판단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A씨의 주장은 지난달 29일 헌재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됐습니다.

헌재는 서울대가 신뢰 보호 원칙을 깬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입시 전형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A씨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고 판단한 건데요.

저소득학생을 특별전형에서 어떻게 뽑을 것인지는 각 대학이 결정하는 것이고, 서울대는 2022학년도 입시 때 이미 기회균형 특별전형Ⅱ에 변화를 준 바 있기 때문입니다. 모집 인원 중 절반을 수능 위주 전형으로 뽑기 시작한 건데, 이는 2019년 6월에 예고되기도 했습니다. 교육부 역시 2018년경부터 "대입 전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며 수능 위주전형 비율을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해왔고요.

헌재는 서울대가 변화된 입시 계획을 공고한 시점에도 문제가 없다고 봤습니다. 고등교육법에 따라 대학은 '매 입학년도의 전 학년도가 개시되는 날의 10개월 전까지' 대학입학전형시행계획을 수립해 공표해야 하는데요. 서울대의 경우 2023학년도가 개시되기 약 2년 4개월 전인 2020년 10월에 입학 전형 예고를 올렸거든요. 법이 정한 시기보다 6개월 빨리 공지한 겁니다.

헌재는 "대학이 입시계획에 매년 새로운 내용을 규정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이상, 특정한 수험 전략에 따른 위험은 수험생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A씨가 가졌던 '신뢰'의 보호 가치가 크지 않다는 거죠.

게다가 헌재는 수능 위주전형 비율을 높이는 것에는 공익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회적·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비교과 활동 등을 체험하기 어려운 저소득 학생들에게 학생부 종합전형은 입시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저소득학생 특별전형을 모두 수능 위주전형으로 실시하는 것은 대입제도 공정성을 강화하고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라고도 했죠.

또 수능은 "입학 전형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도입된 지 20년이 넘은 제도로서 대학교육에 필요한 수학 능력을 측정하는 공인된 시험"이라며 학생을 선발하는 합리적 방법의 하나라고 했습니다.

A씨는 고1의 시간을 모두 날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헌재는 아직 2년 넘게 수능을 준비할 시간이 남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또 학생부 종합전형 전형을 원한다면 수시모집 일반전형이나 지역균형전형에 응시할 수 있다고 했죠. 저소득학생 특별전형에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응시할 수 없게 된다고 해도, 불이익이 크지 않는다는 겁니다.

A씨는 농어촌 학생들을 위한 기회균형 특별전형Ⅰ는 여전히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실시되는 점을 지적했었는데요. 헌재는 헌법상 대학의 자율이 보장되는 만큼 이 정도는 학교가 자주적으로 정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또 농어촌 학생 대상 전형과 저소득층 학생 대상 전형이 동일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원자격이나 목적, 지원자들의 특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두 전형이 똑같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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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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