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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물가 30년만에 최대 급등, 한국도 ‘끈적한 고물가’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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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9월) 외식 물가상승률이 9%를 기록하면서 1992년 7월(9%) 이후 30년2개월 만에 가장 가파르게 올랐다. 이날 서울의 한 식당가 모습. 연합뉴스

5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9월) 외식 물가상승률이 9%를 기록하면서 1992년 7월(9%) 이후 30년2개월 만에 가장 가파르게 올랐다. 이날 서울의 한 식당가 모습. 연합뉴스

한반도에 ‘끈적한 물가’가 상륙했다. 국제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국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세가 두 달 연속 둔화했지만, 외식과 가공식품처럼 한번 가격이 오르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품목의 상승세가 무섭다. 쉽게 떨어지지 않는 물가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의 긴축도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커졌다.

5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CPI는 1년 전보다 5.6% 올랐다. 8월(5.7%)보다 상승률이 0.1%포인트 줄어들며 상승세가 소폭이나마 둔화했다. 다만 전월 대비로는 0.3% 오르며 물가 상승세가 이어졌다. 이미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1~9월, 전년 누계비)은 5%를 기록했다. 연간 물가상승률이 5%를 넘어선 건 1998년(7.5%) 이후 처음이다.

1~9월 누적 물가 5% 뛰어 24년만에 최고

물가 상승세가 둔화한 건 국제유가 하락의 영향이 크다. 석유류가 1년 전보다 16.6% 올랐는데, 7월(35.1%)·8월(19.7%)과 비교하면 상승 폭이 줄었다. 한국이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 평균 가격이 지난 8월 배럴당 97.7달러에서 9월에 배럴당 90.6달러로 하락한 영향이다. 한은에 따르면 석유류 가격 하락은 CPI 상승률을 0.15%포인트 끌어내렸다.

CPI 상승률은 둔화했지만, 국제유가 하락을 제외하면 물가 상승 압력은 더 거세졌다. ‘공급발’ 물가 상승이 내준 자리를 ‘수요발’ 물가 상승이 꿰찼다. 가격 변동 폭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1년 전보다 4.1% 오르며 8월(4%)보다 오름폭이 커졌다. 오름폭으로는 2008년 12월(4.5%) 이후 13년9개월 만의 최대치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물가 상승의 수요자 측 압력을 반영하는 개인서비스 물가는 6.4% 뛰며, 지난 8월(6.1%)보다 오름폭이 더 커졌다. 특히 외식 물가상승률은 9%로 1992년 7월(9%) 이후 30년2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햄버거(13.5%), 해장국(12.1%), 치킨(10.7%) 등 주요 외식품목 가격이 일제히 오른 영향이다. 최근 프랜차이즈 업체를 중심으로 가격 인상이 줄줄이 이어진 여파다. 김밥·떡볶이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으로 꼽히는 분식 가격도 1년 전보다 10% 넘게 상승했다.

한 번 오른 외식 물가는 좀처럼 내리지 않아 물가 상승세를 길게 끌고 간다. 외식과 하방경직성이 큰 가공식품 물가도 8.7% 오르며 2009년 6월(9%)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농산물의 경우 채소류 가격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22.1% 상승하면서 큰 폭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특히 작황이 좋지 않았던 배추(95%), 무(91%) 가격은 1년 전보다 2배 가까이 비싸졌다. 김장철을 앞두고 ‘금배추’가 됐다는 아우성이 통계로 나타났다. 여기에 풋고추(47.3%), 파(34.6%) 등 한식에 빠질 수 없는 채소 가격 상승세도 심상찮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환석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물가점검회의를 열고 “앞으로 소비자물가는 상당 기간 5~6%대의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수요측 물가 압력을 반영하는 개인서비스 물가는 상당 기간 6%대의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전망”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내세워 왔던 10월 물가 정점론도 흔들리게 됐다.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나마 물가를 억눌러온 국제유가 등 공급 측면의 상승 압력도 다시 커질 수 있어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국회에서 “전반적 물가 수준이 높지만 늦어도 10월에는 정점이 되거나 정점이 지났기를 희망한다”며 ‘10월 정점론’을 유지했다.

하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가 유가 하락 방어를 위해 감산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수입 물가를 올리는 원화가치 하락(환율 상승)도 변수다.

“올 겨울 지나야 물가 정점 확인할 듯”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예상보다 유가가 빨리 떨어지고 있지만, 원화가치가 절하돼 그 효과가 상쇄되고 있다”며 “물가가 내려오는 속도가 굉장히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10월부터 오르는 전기료와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도 소비자물가를 0.3%포인트가량 끌어올릴 전망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공급 측면에서 시작된 불이 수요 측면으로 옮겨붙고 있다”며 “겨울철 유럽에서 석유 수요가 증가하는 등 국제유가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올해 겨울은 지나야 물가의 정점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요 측 물가 상승은 중앙은행의 강도 높은 긴축을 부른다. 지난 8월 미국 CPI 발표 후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훨씬 강도 높은 긴축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퍼진 것도 근원 CPI 등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이 다시 커지면서다. 특히 한 번 오르면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주거비 등 경직성 물가지수(Sticky-CPI) 상승의 충격이 컸다.

끈적한 물가의 등장에 한은의 긴축 강도도 더 세질 전망이다. 이미 Fed의 예상을 뛰어넘는 긴축에 이 총재는 “10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새로운 결정이 날 것”이라며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강하게 시사했다. 한은이 오는 12일은 물론이고, 11월에도 빅스텝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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