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권한분쟁은 이제 그만”/김일수 고려대교수ㆍ법학(논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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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법원ㆍ헌재 법리논쟁을 보고/형식적 법해석에 얽매여 영역다툼은 우스운일/기본권 실현에 누가 더 정직ㆍ성실한가가 중요
법무사법 시행규칙에 대한 위헌결정을 둘러싸고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사이에 법리논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그 논쟁의 배경에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깔려 있어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는 곤란하나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은 일이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변호사 사무장 등으로 27년간 근무해왔으나 법무사 시험 응시기회를 얻지못한 61세의 한 시민이 법무사법 제4조 2항의 위임을 받은 법무사법 시행규칙 제3조 1항을 문제삼아 지난해 8월 헌법소원을 낸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이 규칙이 법무사 시험을 대법원 재량으로 실시케 했으나 그동안 법원ㆍ검찰의 퇴직공무원들만으로 수요가 충당됨을 이유로 건국이래 세차례 밖에는 시행되지 않아 이 규정을 믿고 시험공부를 해온 경찰공무원ㆍ법과대학생 등에게는 법무사가 될 기회가 거의 박탈됐으니 이는 평등권 침해』라는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해 법원 행정처장과 법무부장관은 헌법 제1백7조2항의 「명령ㆍ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 대법원이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어 명령ㆍ규칙의 위헌여부를 헌법재판소에 묻는 헌법소원은 부적법하며,헌법소원은 다른 법률에 구제절차가 있는 경우 그 절차를 모두 거친 후가 아니면 청구할 수 없도록 되어 있으므로 청구인은 먼저 행정 쟁송절차에 따라 권리구제를 밟을 일이지 막바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간 심리를 진행해 온 헌재는 지난달 15일 이 대법원 규칙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그 이유는 『이 규정은 시험실시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를 정하는 것이지 시험실시 여부까지 정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님에도 대법원 규칙에서 시험의 실시여부 자체를 법원 행정처장의 재량에 맡긴 것은 대법원이 위임 입법의 한계를 일탈했고 더불어 국민의 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 위해 헌재는 또한 몇가지 다툼의 여지있는 법리를 구성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즉 헌법 제111조 1항 1호가 법률의 위헌심사권을 헌재에 부여한 이상 통일적인 헌법해석과 규범통제를 위해 법률의 하위규범인 명령ㆍ규칙의 위헌여부 심사권이 헌법재판소 관할에 속함은 당연하다는 점,헌법 제107조 2항은 구체적인 소송사건에서 명령ㆍ규칙의 위헌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었을 때 대법원이 최종심사권을 갖는다는 의미에 불과하며 이 때문에 명령ㆍ규칙의 위헌여부에 관한 헌재의 판단권이 배제되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이에 대해 법원 행정처의 연구보고서는 헌법재판소가 헌법 제107조 2항의 명문 규정을 무시하고 명령ㆍ규칙에 대한 위헌심사를 한 것은 월권행위이며,명령ㆍ규칙 등에 대한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이라는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하여,종래의 통설ㆍ판례와는 달리 명령ㆍ규칙이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에 법원에 의한 구제수단이 없는 것으로 잘못 판단됐으며,헌법소원의 보충성 원칙을 무시하여 결과적으로 행정쟁송 절차를 상당부분 무용화시킬 염려가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헌재와 대법원 사이의 견해차는 형식상으로 법리논쟁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질상으로는 관할분쟁이요,법무사직역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 집단의 첨예한 이익분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헌재와 대법원 사이의 논쟁은 실정법 조문의 해석을 둘러싼 형식논리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 보장과 그 실현이라는 실질논리로 돌아가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진리와 정의는 양자의 중간에 위치한다는 일반적인 원리가 이 경우에도 타당하리라는 생각이다.
국민의 기본권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어느쪽의 권한이 크냐는 그다지 중요한게 아니다. 어느 기관이 국민 한사람의 기본권 실현을 위해 성실하고 정직ㆍ신속한가가 중요하다.
이 중요성을 염두에 둔다면 권한의 대소논리보다 원칙과 예외논리가 법무사법 시행규칙의 위헌판단을 둘러싼 관할논쟁에서 해결점을 던져주리라고 본다.
헌법을 비롯한 법률해석은 언제나 판단의 여지를 갖고 있다.
해석의 기준으로 거론되는 입법자의 의사도 고정되어 있거나 확실한 것이 결코 아니다. 입법자의 의사도 객관적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고 그래서 헌법조항의 문언은 변하지 않으나 그 실질적 의미는 헌법판례에 의해 변경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법무사법 시행규칙이 대법원 규칙이라는 점에서 대법원은 더 큰 부담을 지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대법원 스스로 자신의 규칙을 재심사해 위헌여부를 결정,변경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설령 명령ㆍ규칙심사권을 대법원에만 준 것이 문언상으로는 입법자의 의사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대법원 규칙일때 입법자의 객관화된 의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정의의 관점에 합치한다.
불필요한 권한분쟁은 지양하고 실질적인 인권실현을 보장하기 위해 헌재의 위상을 높이는 구체적인 입법개혁노력이 요청되는 시점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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