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민의 '알 권리' vs 檢의 '알리고 싶은 권리'?…조국과 한동훈 [Law談-윤웅걸]

중앙일보

입력

Law談

Law談’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문재인 정부 시절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 검찰과 언론의 소통 창구인 이른바 ‘티타임(비공개 정례 브리핑)’을 중단시켰다. 위 규정은 아울러 검찰의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를 막고 포토라인을 제한함으로써 인권을 보호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내용도 담고 있었다.

지난 2019년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소환될 예정인 날 서울중앙지검 입구에 설치됐던 포토라인. 최정동 기자

지난 2019년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소환될 예정인 날 서울중앙지검 입구에 설치됐던 포토라인. 최정동 기자

죽은 권력인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적폐수사 과정에서 만연했던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와 모욕적인 압수수색 및 포토라인 세우기 등으로 수사를 받던 현직 검사와 전직 군 장성, 국회의원 등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는 권력을 잡은 정치 세력의 전 정권에 대한 정치적 보복과 이에 부합하는 검찰의 가혹한 수사, 정치권과 검찰의 의도를 여과없이 국민에게 전달하는 언론의 무비판적 보도 등 3자가 이뤄낸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

조 전 장관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 위와 같은 야만적 현상에 반성적 고려를 하는 차원에서 위 규정을 제정했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순간에는 검찰의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와 포토라인 세우기에 대해 묵인·방조했다. 검찰의 칼날이 조 전 장관 등 자신들을 향하게 되자 그제서야 검찰과 언론의 접촉을 차단한 것은 얄팍한 정치적 술수의 바닥을 드러내는 행위에 불과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자녀 입시비리·감찰무마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자녀 입시비리·감찰무마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인권 침해에 아랑곳하지 않고 검찰이 여론몰이로 정치적, 사법적 광풍의 진원지가 되는 것을 목도한 필자는 당시 필자가 검사장으로 지휘하고 있던 지방검찰청 소속 검사들에게는 피의사실 공표와 포토라인 세우기를 철저히 금지했다. 비정상이 판을 치니 이런 당연한 조치가 언론의 관심을 받는 이상한 일도 있었다. 이런 연유로 필자는 조 전 장관이 위 규정을 제정하는 취지에는 동감하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위 규정은 목적의 당위성에 불구하고, 조 전 장관과 그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제정돼 조 전 장관이 스스로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만든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이에 필자는 규정의 도입 취지는 동감함에도 시행은 조 전 장관 관련 수사 이후에 해야 한다고 의견을 표한 바 있다.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권력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법을 바꾸는 경우 그 자신에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헌법 정신인데, 조 전 장관의 행위는 이에 반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정부가 다시 바뀐 후 한동훈 장관이 이끄는 법무부는 최근 조 전 장관의 규정을 뒤집는 내용의 ‘형사사건 공보에 관한 규정’을 제정했다. ‘형사사건 공개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기존 조 전 장관의 규정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에 미흡하고 오보 대응 미비로 수사에 대한 불신이 가중된다는 지적이 있어 사건 관계인의 인권을 보호하면서도 형사사건 공보의 공익적 목적도 달성하기 위해 제정했다는 것이 법무부의 설명이다.

언론의 수사 관련 오보로 수사에 대한 불신과 이로 인한 국민의 혼란을 막기 위해 검찰과 언론의 소통 창구를 복원한 것은 그나마 의미가 있다. 그러나 수사 내용을 알리거나 알리지 않는 것이 검찰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져 있어 위험하다. 검찰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언론에 수사 내용을 흘리는 것은 그저 수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닌 검찰의 ‘알리고 싶은 권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은 밀실 재판을 막기 위해 공개성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수사는 밀행성을 원칙으로 한다. 수사의 밀행성은 증거 수집의 효율성 등을 위해 필요하기도 하나, 법정도 가기 전에 유죄의 예단이 내려지는 여론 재판을 막는 데도 필요하다. 즉 수사의 밀행성은 수사 기법으로도 필요하지만, 수사 단계의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은 수사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는 피의사실 공표 등으로 밀행성을 포기하고, 정작 사건 관계인이 방어적 목적에서 필요한 경우에는 수사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밀행성을 철저히 지키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과 언론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즉 가까이해서도 멀리해서도 안 되는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검찰과 언론이 상대의 타락 또는 권력 유착에 대해서 서로 감싸주면서 상호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반대로 권력에 대한 감시와 투명한 사회를 위한 공동 목적에서 그 뜻을 같이하지 못한다면 국가와 사회는 건전하게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조 전 장관의 규정이 검찰과 언론의 관계를 멀게해 권력자에 대한 ‘깜깜이 수사’, 오보 등 부작용을 낳게 했다면, 한 장관이 만든 새로운 규정의 경우 이로 인해 검찰과 언론이 너무 가까워져 또다시 무분별한 수사 상황 생중계, 피의사실 공표 등으로 ‘인격 살인’이 만연하는 야만적 상황이 전개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해 본다.

로담(Law談) : 윤웅걸의 검사이야기

검찰의 제도와 관행, 검사의 일상과 경험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함으로써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검사와 검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형사 사법제도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 합니다.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전 서울지검 2차장검사/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제주지검장/전주지검장.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