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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연수원을 '檢유배지' 취급하는 권력...검찰에 미래 있겠나 [Law談-윤웅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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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얼마 전 검찰 인사를 앞두고 지난 정권의 색채가 강한 검사들을 좌천시킬 자리를 늘리기 위해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수를 확대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을 개정해 법무연수원에서 검사로 보임할 수 있는 연구위원의 정원을 기존 4명에서 9명으로 늘렸다는 것이다. 연구위원은 검사장급이 주로 가는 자리인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검사장을 좌천시킬 수 있는 자리를 넉넉히 확보하게 된 셈이다. 이 조치 또한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충북 진천 소재 법무연수원 정문 모습. 최근 법무연수원은 검찰 인사에서 '유배지'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진천 소재 법무연수원 정문 모습. 최근 법무연수원은 검찰 인사에서 '유배지'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리랜서 김성태.

법무연수원은 검사, 검찰수사관, 교도관, 출입국공무원, 보호직공무원 등 법무부 소속 공무원의 교육 훈련과 법무행정의 발전을 위한 연구·조사를 하는 기관이고,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범죄의 예방과 대처 방안, 형사 정책, 행형 등 중요한 법무 정책에 관한 연구를 담당하는 직책이다. 이와 같이 법무연수원은 법무·검찰의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 및 연구기관으로서 매우 중요한 기관임에도, 이와 무관한 의도로 연구위원 수를 늘린 것은 권력의 인사 편의를 위해 법무연수원을 검찰의 유배지로 전락시킨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법무연수원은 검사들에게 그다지 인기 있는 곳은 아니었다. 법무연수원에 검사가 갈 수 있는 직책은 위와 같이 문제가 된 연구위원 외에도 원장, 부원장(기획부장 겸임), 기획과장, 교수 등이 있다. 원장은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잠시 숨을 고르는 자리이기도 하나, 고검장의 마지막 보직이 되기도 한다. 부원장은 통상 초임 검사장이 가는 자리로서 다른 곳에서 검사장을 마치고 가는 경우에는 좌천성 인사로 여겨진다. 그 외 기획과장이나 교수로 발령받으면 그다지 기분 좋게 가는 자리는 아니다.

법무연수원은 막 임관된 초임검사의 교육은 물론 부장검사, 차장검사, 검사장 등 직급에 따른 교육과 경력 검사들에 대한 분야별 전문화 교육 등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검사들의 역량 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법무연수원에 검사들이 교수나 연구위원으로 발령받는 것이 이른바 ‘물먹은 인사’로 인식되는 것은 검찰의 미래 대비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인사권자에 의해 유배지로 활용되는 것은 조직 구성원들에게 교육에 대한 인식을 더욱 저하시키는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에서 예비 검사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우상조 기자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에서 예비 검사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우상조 기자

조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과 관련해, 필자가 검사 시절 듣거나 알게 된 두 가지의 신선한 충격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먼저, 필자는 평검사 시절 국가정보원에 2년간 파견된 적이 있는데 그때 알게 된 국정원의 ‘훈육관 제도’는 검찰이 배워야 할 제도라고 생각했다. 국정원은 신임 직원에 대해 1년간 교육을 실시하는데, 여기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이 훈육관이다. 훈육관은 10년 정도 경력의 선배 기수에서 선정되는데 동기 중 선두그룹에서 엄선해 임명된다고 한다.

검사의 경우 경력이 10년 정도 되면 부부장검사 또는 초임 부장검사로서 검찰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기이다. 검찰에서는 가장 왕성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기수의 선두 그룹은 당연히 수사를 해야지 한가롭게 교육 업무에 배치해야 한다고 하면 정신 나간 소리를 한다고 할 것이다. 국정원도 검찰과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그러함에도 국정원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만한 기수의 선두 그룹에서 훈육관을 임명하여 조직의 차세대를 이어갈 신임직원들을 교육한다는 것은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국정원 훈육관 제도를 보면서 검찰에서도 후배 검사들을 지도하는 법무연수원 교수가 물먹은 자리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동기 중 가장 선두그룹이 배치되고 그 자리가 가장 명예롭게 인식되기를 소망해 보았다. 가장 훌륭한 자원이 후배 검사를 지도하는 직책에 배치되고 이것을 마치면 또 요직에 배치되는 순환 구조를 가진다면 교육을 통한 검찰의 미래는 매우 밝을 것이다. 단순히 한두 번 해보는 인사 시도가 아니라 국정원 훈육관 제도처럼 조직에 메시지를 줄 정도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본다.

다음으로 정보통신(IT) 업계를 선도하는 다국적 기업의 임원이 부장검사 교육에 강사로 와서 강의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었다. 그 강의내용 중 필자가 주의 깊게 들은 내용은, 자기 회사는 3개월마다 인사고과를 하는데 그 기간 동안 ‘업무를 얼마나 잘했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3개월간 ‘본인의 발전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보고하게 하고 이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 회사를 세계적 기업으로 발전시킨 원동력으로 본다는 것이다. 업무 성과가 아니라 개인의 발전 계획으로 인사고과를 한다니 ‘일은 언제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구성원 개개인의 발전이 곧 조직의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이 또한 매우 신선한 아이디어였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모습.   법무부는 최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검사 정원을 5명 더 늘렸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검찰 내 대표적인 '한직', '유배지'로 꼽힌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모습. 법무부는 최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검사 정원을 5명 더 늘렸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검찰 내 대표적인 '한직', '유배지'로 꼽힌다. 연합뉴스

필자는 언젠가 한 선배 검사로부터 ‘검사들은 사법시험 합격 때 최고치로 충전한 지식을 평생 방전만 하면서 살다가 가장 무식한 사람으로 검사를 그만두게 된다’는 자조 섞인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과장된 이야기이지만, 평생 우등생으로 살아온 검사들의 특성상 더 이상 공부하지 않아도 내가 가장 똑똑하다는 자만심으로 세상의 변화에 대한 공부를 소홀히 하다가 결국 세상에 뒤처지게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검찰은 지식 충전 조직인가, 지식 방전 조직인가? 기존에 습득한 지식과 경험에만 의존한 채 새로운 지식이나 모자라는 분야의 지식을 채우지 않는 것은 지식의 방전이라 할 수 있다. 조직 전체가 그러한 경향이 강하다면 지식 방전 조직인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 또는 세상의 변화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검찰은 올바른 판단을 위해 급변하는 지식 세계에서 뒤처지지 않아야 하고, 검사들에게 많이 모자라는 분야로 꼽을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 즉 인문학적 소양은 두고두고 충전을 해야 한다.

검찰이 지식 충전 조직이 되려면 법무·검찰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가 구성원들에게 교육과 연구에 대한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런데, 법무연수원을 유배지화한 것은 그 반대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조직 구성원들은 조직의 최고위층이 무엇을 중시하고 무엇을 무시하는지를 살핀다. 검찰의 미래를 중시한다면 법무연수원을 유배지로 활용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로담(Law談) : 윤웅걸의 검사이야기

검찰의 제도와 관행, 검사의 일상과 경험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함으로써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검사와 검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형사 사법제도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 합니다.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전 서울지검 2차장검사/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제주지검장/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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