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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거리 문화, 권력 아부 판치면…검찰 인사 공정성 흔들린다 [Law談-윤웅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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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인사만큼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인사는 없는 것 같다. 웬만한 부처의 장관 인사보다 검사장급 인사나 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의 주요 보직에 대한 검사 인사가 언론의 관심을 더 받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수십년간 검찰의 활동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다 보니 검사 인사도 덩달아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마치 대한민국이 검찰에 의해 이끌어지는 느낌이어서 그다지 좋은 현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제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까지 배출되고, 정부 주요 직책에 검찰 출신들이 상당수 배치돼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 같아 매우 우려스럽다.

검찰 인사는 왠만한 부처의 장관 인사보다 더 관심을 받는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뉴스1

검찰 인사는 왠만한 부처의 장관 인사보다 더 관심을 받는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뉴스1

검찰청법 제34조 제1항은 검사의 임명과 보직, 즉 검사에 대한 인사는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하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법무부 장관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하는 경우에는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서 하도록 하고 있다.

얼마 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법무부 장관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자신의 후임자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검찰총장이 두 달째 공석인데 검사 인사를 법무부 장관이 다 해버렸다. 이런 선례가 있냐?”라고 물었는데, 이는 바뀐 정부에서 위 검찰청법 제34조 제1항을 잘 지켜서 검사 인사를 했느냐는 질타였다. 그런데 한동훈 장관은 “과거에 의원님께서 장관일 때 검찰총장을 완전히 패싱하고 인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언론은 불과 얼마 전 자신이 행한 과오를 잊고 위와 같은 질문을 한 박범계 의원이 패배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런데 자신이 법을 지키지 않았음에도 ‘후임 장관이 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탓하는 것이나, 이에 대한 답변으로 ‘전임 장관도 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되받아치는 것은 양쪽 다 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십보백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법에 정한 절차를 지키는 것은 인사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첫걸음임을 명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정치적 외압을 막을 의무가 있는 검찰총장이 검사 인사에 관여하지 못하고 취임하는 경우, 검사들이 검찰총장 대신 권력을 바라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지난달 25일 국회 정치ㆍ외교ㆍ통일ㆍ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국회의사중계시스템 캡처

지난달 25일 국회 정치ㆍ외교ㆍ통일ㆍ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국회의사중계시스템 캡처

대통령,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의 인사권에 대한 실무 작업은 법무부 검찰국장과 그 산하의 검찰과장(과거 검찰1과장) 및 인사 담당 검사가 맡아서 한다. 검사장급인 검찰국장은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반부패부장(과거 중앙수사부장) 등과 함께 검찰 3대 요직에 해당하고, 부장검사급인 검찰과장은 과거 언론에 의해 ‘검찰의 황태자’라고 불린 바 있다. 인사 담당 검사는 ‘1-1(검찰1과의 수석검사라는 뜻)’로 칭해지는데 검사 사이에서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는다. 검사의 인사를 담당하는 부서의 이러한 면모는 검사 인사의 중요성과 함께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지난 수십 년간 검사 인사는 1년에 2회 이상 시행됨에도 그 공정성에 대한 잡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특히 정치권력이 비교적 관심을 덜 갖는 차장검사 이하의 검사에 대한 인사는 평검사 때부터 관리되어 온 실적과 평판 등 객관적 서열을 바탕으로 하는 검찰 자체 논리로 진행되는 까닭에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간혹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치게 되는 영전 인사가 있는 경우에는 검찰 내부에서 손가락질을 당하기 십상이다.

검찰 조직이 가장 내세울 만한 점은 인사와 관련된 ‘상납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정부 조직에서 승진이나 진급을 위한 상납으로 문제된 경우가 종종 발생한 점에 비춰 보면, 검찰은 그 문화적 특징상 승진을 위해 상납을 했다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검찰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내리사랑’이 강점인 조직이다.

다만, 이러한 ‘내리사랑’ 문화가 간혹 ‘000 사단’으로 불리며 일종의 사조직을 형성하게 되는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조직이 인사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검사 인사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인연은 혈연, 지연, 학연이 아니라 ‘직연’이다. 전국을 1년 내지 3년에 한 번씩 옮겨 다니며 함께 근무하게 된 인연이 직연이다. 함께 일해 보고 실력과 평판을 검증한 직연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갖다 쓰는 혈연, 지연, 학연보다 공정한 점은 분명히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시절 그와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는 검사, 특히 특수부 계통의 검사들이 중용되고 그 옆에 가보지도 못한 검사들은 찬밥 신세가 돼 검찰 내부가 인사로 갈라진 적이 있다. 직연도 이렇게 너무 중시하다 보면 인연이 없는 검사 중에도 훌륭한 자원이 있다는 것을 도외시하고 끼리끼리 뭉치게 되는 문제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검사장 등 고위직 검사에 대한 인사의 문제점은 검찰 자체보다 정치권과의 역학 관계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이는 정치권력이 검사 인사에 관여하는 것과 검사들이 정치권력에 인사 청탁을 하는 것 두 가지 문제로 나눠 볼 수 있다. 검찰 자체 논리로 승진한 검사장들은 누구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부채 의식이 없는 반면, 검찰 내부 평가에 의해서는 검사장이 될 수 없는 검사 중 정치권력의 보은 인사로 검사장이 된 사람이나 정치권력에 청탁해 검사장이 된 사람은 자기를 임명해 준 정치권력에 보답을 해야 하는 부채 의식을 갖게 돼 어 결국 검찰권을 왜곡하여 행사하게 된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몇몇 검사장이 보여준 행태는 이를 대변하고 있다.

검사 인사의 공정성은 정치권과 검찰 중 어느 한 쪽이 모자라도 지켜지기 어렵다. 정치권은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마음대로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휘둘러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해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검사들은 내부적으로는 직연의 장점은 살리면서도 인사의 공정성을 해치고 검찰을 갈기갈기 쪼개는 패거리 문화를 멀리해야 한다.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정치권에 기웃거리면서 권력에 고개 숙이고 벼슬을 구걸하는 검사도 없어야 한다. 부디 인품과 실력을 갖춘 훌륭한 검사들이 제대로 평가받기를 기대해 본다.

로담(Law談) : 윤웅걸의 검사이야기

검찰의 제도와 관행, 검사의 일상과 경험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함으로써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검사와 검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형사 사법제도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 합니다.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전 서울지검 2차장검사/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제주지검장/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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